지하철역 이름 믿었다간 '고생문'…버스나 택시 타고 더 가야
역사 명칭 선정 때 홍보·민원보다 이용자 편의 고려해야

대전 도시철도 1호선 현충원역에서 내려 국립대전현충원까지 걸어가려면 1시간 가량이 더 필요하다.

보행로 기준 최단 거리는 3.5㎞인데, 중간에 지하도까지 통과해야 한다.

노년층이라면 쉽게 걸어갈 엄두를 낼 수 없는 고행길이다.

"지역의 주요 공공시설을 역명으로 사용했다"는 도시철도공사 설명에도, 환승 시내버스 노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시민 입장에선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도 범어사와 직선거리로 2.4㎞ 떨어져 있다.

택시를 타고 가도 비탈길을 5분 가량 더 가야 한다.

수인선(인천∼수원) 전철 송도역(연수구 옥련동)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현지 행정구역 대신 옛 협궤열차 운행 당시 역사 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주민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수구의 한 주민은 "송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한쪽은 수인선 송도역 주변에서 기다리고, 다른 한쪽은 송도국제도시에서 기다렸던 적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인천시민이 송도로 부르는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는 수인선 송도역에서는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하고 최소 5개 역을 더 가야 할 만큼 떨어져 있다.

지하철(도시철도) 역사 이름이 실제와 동떨어진 이 같은 사례는 주변에 대학이 있을 때 더 두드러진다.

홍보 효과를 노리는 학교 측에서 기존 역사 이름에 교명 병기를 요구하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이다.

부산-김해 경전철 김해대학(안동)역은 안동공단에 있는 데다 대학과 3㎞나 떨어져 있다.

외지에서 김해대학을 찾아온 승객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바로 옆 인제대(활천)역도 실제 대학과 2㎞ 넘는 거리에 있다.

장신대(화정)역과 가야대(삼계)역도 대학과 700∼800m나 떨어져 역사에서는 전혀 대학 분위기가 나질 않는다.

경기 남부 지역에선 도보는 커녕 버스를 타고도 10∼20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 포털사이트의 '빠른 길 찾기' 정보를 검색한 결과 1호선 평택시 서정리역(국제대학)에서 국제대학까지는 마을버스를 타고 5개의 정류장을 거쳐 내려서도 4분 정도 걸어야 한다.

분당선 죽전역(단국대)에서 단국대 죽전캠퍼스를 갈 때도 마을버스로 9개의 정류장을 지나 4∼5분 더 걸어야 한다.

한 용인시민은 "죽전역에서 단국대까지는 사실상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라며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를 걸어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서울대 입구까지는 걸어서 25분 가량(직선거리 1.7㎞) 걸린다.

1호선 오산대역, 4호선 총신대입구(이수)역과 한대앞역, 6호선 증산(명지대)역, 신분당선 광교중앙(아주대)역, 부산 도시철도 4호선 영산대역,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신천(경북대입구)역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구도시철도공사 한 관계자는 "대학 측에서 역 이름 개정 요청을 하는 데다, 해당 학교 학생이나 방문객이 역에 내리면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시 공용물명칭제개정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역사 명을 병기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 해도 거리상으로 지나치게 먼 시설이나 학교의 이름을 역사 명으로 사용하는 건 이용자 입장에서 불편할 수 있다.

차내 방송을 하거나 안내문을 게시하는 방식으로 해당 기관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향토성이나 지역 특성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역사 위치와 크게 관계없는 곳의 이름을 끌어다 쓸 필요는 없다"며 "승객 편의를 고려한다면 역사 주변 거점이나 행정동 명에서 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영규, 강영훈, 한무선, 최병길, 김동규, 신민재, 이재림)


(전국종합=연합뉴스) wald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