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용담복지協, 5억여원대 땅 희사한 고 김금옥 여사 추모
기탁한 토지 보상금으로 건물 신축, 임대료로 이웃돕기 실천

1981년 추석을 앞둔 가을, 60대 후반의 한 할머니가 청주시 상당구 용담동 주민 친목모임인 '가좌골 동계(洞契)' 회원들과 마주 앉았다.

이 할머니는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말과 함께 한통의 서류 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생활한 그의 전 재산인 2천㎡의 땅문서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부탁했다.

자손이 없는 자신과 남편의 제사를 지내달라는 것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인 김금옥 여사는 땅을 기탁한 지 3년 뒤인 1984년 세상을 떠났다.

동계 회원들은 가족이 없는 김 여사의 장례를 치르고, 그를 청주 가덕 공원묘지에 모셨다.

주민들은 약속을 잊지 않고 이듬해부터 해마다 그의 기일(忌日)인 음력 5월 24일이 되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마련해 제사를 지냈다.

32주기를 맞은 28일에도 주민들은 어김 없이 용담 복지회관에서 제사를 올렸다.

주민들은 김 여사와 한 또 다른 약속도 지키고 있다.

동계 회원들은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기탁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인근 복지시설에 쌀을 전달해왔다.

김 여사가 사망한 지 1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말 그가 맡긴 땅이 용암2지구 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5억7천만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동계는 체계적으로 이웃돕기를 하기 위해 2004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이름도 '청주 용담동 복지협의회'로 정하고, 단체의 성격을 친목단체에서 어려운 환경의 주민들을 돕는 조직으로 전환했다.

이 협의회는 김 여사 토지 보상금으로 건물을 신축하고, 이곳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이웃돕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건물 옆에 김 여사의 고마운 뜻을 기리는 공덕비도 세웠다.

협의회는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20여 명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한다.

설과 추석을 앞두고 쌀 60포대(20㎏)를 불우 이웃에게 전달한다.

김 여사 추모제 열리는 날에는 동네 노인 100여 명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하고 경로잔치도 매년 열고 있다.

경로당 겨울철 기름값 지원, 효행상 시상 등의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 협의회 신재우(68) 대표이사는 "이웃돕기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고인과 한 약속"이라며 "이웃사랑을 실천한 김 여사의 뜻이 널리 퍼져 이웃간 정이 넘치는 훈훈한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bw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