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니가 가라, 유럽"…꿀출장의 반전
의류회사에 다니는 김지은 대리(28)는 잦은 해외 출장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해외사업팀에 속한 그는 회사 공장이 있는 인도, 방글라데시 출장이 잦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반드시 가고, 부정기적으로 갑자기 출장이 잡히기도 한다.

해당 국가의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길게는 한 달에 이르는 출장 기간 동안 그는 공장과 숙소에만 머무른다. 가끔 숙소 근처에서 총소리가 들리거나 관광객이 피살됐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해 시내관광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거리를 들고 와 숙소에서 일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한국에서 다운받은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김 대리는 “출장 때문에 이직을 고려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부모님은 위험한 나라로만 출장간다고 걱정이 한가득이세요. 워낙 강하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얘기해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어떤 직장인에게 해외 출장은 지친 업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김 대리와 같이 해외 출장이 스트레스인 직장인도 많다. 달라진 환경에 스스로 적응하기도 바쁜데 동행한 선배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꼬여버린 해외 근무

대형 건설사 해외플랜트팀에 근무하는 박 과장(34)은 작년 말 브라질로 6개월짜리 단기 해외 파견을 떠났다. 서울에서 워낙 멀어 남들이 꺼리는 파견지다. 하지만 “다녀오면 원하는 부서로 보내준다”는 회사 인사 관련 부서의 언질에 큰 맘 먹고 브라질행을 결심했다.

박 과장은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지카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브라질이 위험한 지역으로 여겨지면서 그의 후임으로 아무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결국 회사에서는 박 과장에게 “해외 파견 기간을 연장하자”고 최근 제안했다. 박 과장은 “이왕 나온 김에 지카 바이러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달래지만 그러다 1~2년이 지나버리면 복귀 후 내가 희망하는 부서로 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전업체에 다니는 한 대리(33)는 최근 뜻밖의 출장 일정이 잡혀 쾌재를 불렀다. 부장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대형 가전박람회를 답사하는 출장이 있는데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기에 흔쾌히 수락한 것.

이 출장은 전시회장만 한 바퀴 둘러보고 나머지 기간은 유럽 여행을 하면 되는 ‘꿀 출장’으로 사내에 알려져 있었다. 한 대리는 출장이 결정된 이후부터 돌아볼 만한 여행지 정보를 얻기 위해 틈만 나면 이탈리아 여행 관련 블로그를 뒤졌다.

하지만 이게 웬일. 부장은 출발 1주일 전 한 대리에게 “이번 전시회에 우리 회사 최고경영자(CEO)도 참석하기로 했으니 사전조사는 물론 보고서까지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알고 보니 “CEO가 박람회에 참석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선임들에게 퍼지면서 모두 출장가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기회가 대리급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한 대리는 “이렇게 좋은 출장을 왜 다들 안 가나 했는데 역시나 반전이 있었다”며 “1주일간 속성으로 영어학원을 다닌 것은 물론 사전조사 및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출장 한 달 전부터 고생했다”고 말했다.

선배의 난감한 제안

자동차회사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는 박 대리(32)는 지난달 유럽의 한 도시에 1주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평소 선망하던 도시라 즐거운 마음으로 출장 기간을 보내고 있는데, 출장 기간 막바지에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선배들이 자유 일정이 잡힌 마지막 날 “좋은 곳(?)에 가서 놀자”고 제의한 것. 현지에서 유명한 홍등가에 가서 성매매를 한 번 해보자는 의미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성매매 경험이 전혀 없는 박 대리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는 “다들 가는데 안 따라가면 ‘이상한 놈’으로 찍힐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다”며 “잠깐 호기심에 ‘한 번 가볼까’ 하고 생각도 했지만 평소 신념에 따라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박 대리는 선배들의 거사(?) 당일 저녁, 숙소에서 서성이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화학회사에 근무하는 황 대리(34)는 올해 초 독일로 출장을 다녀왔다. 입사 5년 만에 처음 생긴 출장 기회인 데다 한 번도 유럽을 가 본 적이 없어 황 대리는 출장 전부터 매우 들떠 있었다. 하지만 출장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함께 떠난 이 부장 때문이다.

황 대리는 출장 기간 내내 이 부장의 ‘수행비서’ 역할을 해야 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이 부장은 거래처는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공공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시시콜콜하게 황 대리에게 물었다. 매일 밤 바로 옆에서 울리는 이 부장의 코골이는 황 대리의 잠을 방해했다.

출장 3일차부터는 “현지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며 “맛있는 일식집이나 한식집을 찾아보라”는 맛집 탐방 임무까지 줬다.

황 대리는 유럽여행 블로그를 뒤져서 끼니 때마다 이 부장이 원하는 식당을 찾아야만 했다. 황 대리는 “공식 일정도 힘들었지만 이 부장과 함께 다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며 “다음에 출장 기회가 온다면 누구와 함께 가는지를 먼저 파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힘든 출장 다녀왔더니 “휴가도 가려고?”

마케팅회사에서 일하는 이 대리(30)는 최근 해외 업체와의 미팅을 위해 10일간 싱가포르와 일본을 다녀왔다. 출장 기회가 많지 않은 동년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출발한 출장이었지만, 막상 현지에서 보니 출장 업무가 국내 업무보다 더 힘들었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업무와 접대 자리 탓에 이 대리는 평소보다 2~3배는 더 일한 것 같았다. 그는 “미팅과 식사가 끝나면 밤 11시가 됐고, 완전히 녹초가 돼 침대에 눕는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고생 끝에 한국에 돌아온 이 대리. 타지에서 한 고생을 여름휴가로나마 보상받을 마음으로 당장 휴가 계획을 잡았다. 그러나 “무슨 해외 출장 다녀오자마자 휴가를 가?”라는 팀장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 팀장은 해외 출장을 잠시 놀러갔다 온 것쯤으로 생각했다.

당황한 이 대리는 “열심히 일하다 온 거 잘 아시지 않느냐”며 수차례 해명했지만 팀장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 대리는 “고생하며 일한 대가로 휴가를 쓰는데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냐”고 속상해했다.

유하늘 기자 sk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