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기 항체가 '트로이목마' 역할…백신개발 단초도 발견

뎅기열에 감염된 적이 있는 사람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4일 의학전문지 메디컬익스프레스 등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태국 3개국 공동연구팀은 뎅기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이 있는 사람에게 생긴 저항력이 오히려 지카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로 은밀하게 침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트로이의 목마'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학술지 '네이처 면역학'(Nature Immunology)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팀은 일부 뎅기열 바이러스 항체가 인체 내로 침입해오는 지카 바이러스를 인식해 달라붙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항체가 지카 바이러스에 제대로 달라붙어 중화(무력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침입과 증폭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하면 혈액 속의 크기가 큰 단백질인 항체가 달라붙어 중화(무력화)시키고 면역시스템이 병원체를 파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항체들은 한 번 경험한 외부 침입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들어올 경우 바로 대항한다.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체내에 이미 형성된 뎅기 바이러스 항체가 지카 바이러스 침입을 알아채지만 제대로 달라붙지 못해 중화작용을 못 한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이 이 항체가 잘 싸우는 것으로 착각해 지카 바이러스에 대항하지 않는 사이에 오히려 지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게 된다는 뜻이다.

두 바이러스는 모두 흰줄숲모기가 옮기는 플라비바이러스속이어서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이처럼 항체가 오히려 감염을 증폭시키는 효과(ADE)는 이미 뎅기열과 관련해서는 밝혀져 있다.

뎅기열에 두 번째 걸린 사람의 경우 처음 감염 때보다 증상이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한편 이 연구팀은 네이처 면역학의 자매학술지 '네이처'에 실은 또 다른 논문에서 "뎅기열 바이러스의 여러 항체 중 하나가 지카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을 이끈 영국 제국대학(Imperial College)의 개빈 스크리튼 교수는 "아직 초기 단계의 발견에 불과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지카 바이러스 창궐 이유를 밝히고 백신 개발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뎅기열은 지카만큼 치명적이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감염자가 급증해왔다.

세계 인구의 약 40%가 감염 위험 지역에 살고 있으며, 연간 3억9천만명이 감염되고 있다.

브라질 등 중남미에선 지카 바이러스 창궐 전에 이미 뎅기열도 만연해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