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한 자금 운용으로 본 피해를 타인 돈으로 돌려막으려 한 것은 명백한 기만이자 위중한 사기 행위입니다.”(검사)

“사업 적자 돌려막기를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만’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습니다.”(변호사)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9호. 최창영 형사28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 튀는 공방에 귀를 기울였다. ‘재벌가 사모펀드’를 사칭해 배우 정우성 씨 등을 상대로 120억여원의 사기를 친 혐의를 받고 있는 유명 방송작가 박모씨에 대한 1회 공판 현장이다.

검찰 측은 “박씨가 속옷판매회사 등의 사업체를 방만하게 운영하다 수십억원의 빚을 졌고 구체적인 변제 계획도 없으면서 원금과 큰 수익을 보장하며 피해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공소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곧바로 피해액 규모를 따졌다. 사업 적자를 돌려막기 위해 투자자를 속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박씨 변호인은 “당시 박씨의 사업은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사모펀드는 새로운 투자를 위한 접근이었다”고 말했다. 또 “거래내역이 너무 복잡하고 자료가 방대해 투자 금액이 사업만을 위해 쓰였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향후 변론기일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비공개 재판을 요구하기도 했던 박씨는 법정 입장 때부터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참관인에 놀란 듯 잠시 멈칫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제를 통해 알게 된 정씨에게 “재벌가 등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고급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속여 2008년 11월부터 이듬해까지 22차례에 걸쳐 46억2600만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구속기소됐다. 또 탤런트 황신혜 씨의 이름을 팔아 자신이 하는 사업에 투자하라며 지인에게서 50억원 넘게 받아낸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박씨의 다음 변론기일은 7월14일이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