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광고판 조명에 잠 못들고, 빛공해 민원에 공항 유도등 못켜고
야구장 인근 아파트 단지 야간 조도 주거지역 기준치 2배 이상

인공조명 탓에 밤에도 대낮처럼 밝아 편안한 휴식과 수면을 방해하는 '빛 공해'(Light Pollution).
한국의 빛 공해 정도가 주요 20개국(G20) 중 두 번째로 높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인공위성으로 밤하늘을 살펴본 결과 한국은 국토면적의 89.4%에서 빛 공해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돼 G20 국가 가운데 이탈리아(90.3%)에 이어 두 번째로 빛 공해 노출 정도가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빛 공해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해마다 크게 늘어나 최근 3년간 연평균 3천여건에 달했다.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땅 위에서 빛 공해 탓에 대한민국의 잠 못 드는 밤을 살펴봤다.

◇ 빛 공해에 '밤을 낮처럼 사는 사람들'
"야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밤에도 태양이 떠요.

"
지난 14일 오후 광주 북구 프로야구가 한창인 KIA 타이거즈 홈구장 옆 아파트 주민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렸다.

야구장 1루 쪽을 비추는 조명이 아파트 단지에 강하게 내리쬐면서 아파트 단지는 마치 대낮처럼 훤했다.

주민들은 "아이들이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태양이 떴다고 시험공부도 못한다"며 "야구경기가 끝나고도 자정 이후까지 조명이 꺼지지 않아 잠을 못 이룬다"고 하소연했다.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야간경기가 열리는 날의 조도를 측정한 결과 주거지역 기준치인 10㏓를 2배 웃도는 20㏓ 내외의 빛이 쏟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김해공항은 29억여원을 들여 연장한 활주로 유도등을 7개월째 못 켜고 있다.

주변 월포마을 60여 가구 주민이 심한 빛 공해에 시달리게 됐다며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공사를 마치고도 유도등을 켜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 서구 검암동 주민들은 네온사인 불빛에 수개월째 밤잠을 설쳐 참다못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은 해당 가게에 영업시간이 끝나면 반드시 조명을 끄라고 주의를 줬다.

빛 공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지난해 인공조명에 따른 농작물 피해로 보상받는 사례도 처음으로 나왔다.

경기 의왕역 인근 군포시 부곡동에서 콩과 들깨를 재배하는 농민이 철도역 야간 조명 때문에 농작물의 수확량이 감소했다고 피해배상을 요구하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배상 결정을 내렸다.

◇ 해마다 3천여건 빛 공해 민원 "못 살겠다"
16일 각 지자체의 최근 3년간 '빛 공해 관련 민원 현황'을 잠정 집계한 결과, 해마다 3천여건 이상의 '빛 공해 민원'이 각 지자체에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3천200여건, 2014년 3천800여건에 이어 2015년에도 잠정 집계 결과 3천여건에 넘어섰다.

전국에서 빛 공해 민원이 가장 많은 서울시는 2013년 778건, 2014년 1천571건에 이어 2015년에는 1천216건의 빛 공해 민원이 접수됐다.

2015년 기준으로 수면방해 1천74건, 생활불편 75건, 눈부심 62건 등의 순으로 빛 공해 민원이 제기됐다.

빛 공해 민원은 광주에서 2013년 164건, 2015년 423건으로 급증했고 경남에서도 2013년 280건에서 2015년 460건으로 크게 늘었다.

2012∼2013년 20여건 민원이 접수된 인천에서는 2014년에 261건이 접수돼 10배나 증가했다.

2013년 593건, 2014년 301건의 민원이 접수된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빛 공해 환경영향' 용역 결과 주거지역 평균 40%가 인공조명 빛 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울산 환경단체가 지난해 표본조사한 결과 상업지역 광고물의 88%가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이 정한 빛 방사 허용치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 빛공해 방지법 제정됐지만, 여전한 고통
밤에 각종 조명으로 빛 공해에 시달리는 사람은 비만과 불면증에 노출될 위험도가 높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식물의 경우 성장에 영향을 받고, 여름이면 도심에서 한밤중까지 울어대는 매미, 산란기가 앞당겨진 개구리, 도시의 빛 때문에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 반딧불이 등이 모두 '빛 공해'의 그늘이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빛공해방지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지만 법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빛공해방지법의 핵심은 각 지자체가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해 빛 공해 지역에 개선명령이나 과태료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각 지자체는 관계 법령에 따라 조례를 만들고 환경영향 평가·빛 공해 방지계획을 수립해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에 나서고 있다.

강원, 충남, 충북, 전북, 경남, 경북 등 6개 시도는 산지와 농지가 대부분인 지역적 특성과 법 적용에 따른 지역개발 규제 문제를 고려해 아직 조례 제정을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조명환경 관리구역 지정 이전에 설치된 인공조명 시설에 대해서는 5년동안 개선 유예기간을 둔다는 조항 탓에 현재 빛 공해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민원은 대부분 당장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빛공해방지법은 사실상 규제법으로 인공조명피해 방지하는 의미가 있지만, 상업·관광산업과 지역개발 시책과 충돌 지점이 있다"며 법 적용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pch8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