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전체가 검찰의 대대적 비리 수사로 '초토화'된 가운데 그룹 총수 신동빈 회장이 15일 출장지인 미국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수사와 함께 중단된 호텔롯데 상장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 한·일 롯데를 장악한 경영권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내비쳤다.

◇ 호텔상장, 국부유출 해소 '첫 단추'…'연내 실현'은 불투명
"호텔롯데의 상장은 무기한 연기가 아니고, 다시 준비해서 연말까지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상장은 국회에서 국민과 약속한 사항이므로 꼭 지키겠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현지시간 14일 오전(한국 시각 15일 새벽)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에서 열린 롯데케미칼-미국 액시올 합작법인의 에탄 크래커(분해) 공장 기공식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호텔롯데는 당초 이달 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될 예정이었으나, 압수수색 등 검찰의 롯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지난 13일 "최근 대외 현안과 관련, 투자자 보호 등을 고려해 연기한다"며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롯데가 호텔롯데 상장을 포기했다", "무기한 연기했다" 등의 해석을 내놨지만 이날 신동빈 회장은 분명히 호텔롯데 상장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신동빈 회장과 롯데그룹 입장에서 호텔롯데 상장은 국적 및 국부유출 논란, 지주회사 체계 전환을 비롯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차원에서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할 필수 선행 조건과도 같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지난해 8월 경영권 분쟁 관련 대국민 사과문에서나 같은 해 9월 국정감사에서 그룹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호텔롯데 상장을 약속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의 희망대로 '연내' 호텔롯데의 상장이 재추진돼 성사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현재 롯데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배임 혐의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수사 과정에서 호텔롯데가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연내 상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감사보고서 감리 결과 국내회계기준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되거나 과징금 부과 조치를 받아 상장심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3년 이내 상장예비심사를 다시 신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지 않더라도,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상장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상장신청 접수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롯데는 다시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때까지 호텔롯데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아울러 일단 예비심사를 통과하는 100일안에 상장을 마쳐야하는만큼, 물리적으로도 늦어도 8월 전까지까지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상장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다.

롯데 관계자는 "사실 검찰 수사 결과나 진행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만큼 솔직히 '연내'라는 상장 시점을 반드시 지킨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며 "그런 상황임에도 회장이 연내 상장을 언급한 것은 한국 국민의 사랑을 받는 롯데를 만드는 첫 걸음이 호텔롯데 상장인만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달말 홀딩스 표대결서 '세 번째 승리' 자신
또 이날 기공식에서 신 회장은 한·일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달말 주총과 관련, "주총 결과에 대해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과 롯데 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이미 지난달 신 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해달라고 롯데홀딩스에 공식 요구했다.

실제 안건 상장 여부는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결정되는데 거부할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정식 안건으로 채택돼 주총 당일 표 대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신 회장의 이날 발언은 검찰 수사 국면에도 불구하고 일본롯데에 대한 장악력에는 전혀 동요가 없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두 차례의 주총 표 대결에서는 모두 신동빈 회장이 압승했다.

작년 8월 홀딩스 임시 주총에서 신동빈 회장이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 건,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경영에 관한 방침' 건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분 만에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올해 3월 6일 주총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제기한 자신의 이사 복귀와 신동빈 회장·다카유키 사장 이사 해임 건이 30분 만에 모두 부결됐다.

하지만 현재 신동빈 회장과 호텔롯데·롯데면세점·롯데마트 등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비자금, 면세점 입점 로비, 가습기 살균제 인명피해 등으로 동시에 수사를 받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한 만큼,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 8일 신격호 총괄회장의 입원에 동행하기 위해 입국했던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실제로 10일 롯데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창업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중대성에 비춰 정기 주총에 앞서 롯데홀딩스와 종업원지주회(홀딩스 지분 27.8%)에 긴급 협의를 요청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표 대결을 앞두고 직접 종업원지주회 등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펼치기 위해 신 부회장은 이미 12일 밤 일본으로 돌아갔다.

신동빈 회장도 이번주말까지 미국 출장을 마친 뒤 귀국하지 않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롯데의 현안을 챙기고 홀딩스 주총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고유선 기자 shk999@yna.co.kr,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