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마음에 산행…혼자 있는 여성 보고 돈 뺏으려 범행"
"못 쫓아오게 옷 벗겨"…도주 후 기사보다 압박감에 자수


수락산 살인사건에 이어 사패산도 나홀로 여성 등산객의 돈을 노리고 살해까지 한 '강도살인사건'으로 결론났다.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12일 사패산 등산로에서 50대 여성의 금품을 빼앗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강도살인)로 정모(45·일용직 근로자)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7일 오후 3시께 의정부시 사패산 호암사로부터 100여m 떨어진 지점에서 피해자 정모(55·여)씨의 금품을 빼앗으려고 머리를 다치게 하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피의자가 막막한 마음에 산에 올랐다가 혼자 등산 온 피해자를 보고 돈을 뺏으려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피해여성의 가방 안에서 지갑을 빼앗은 뒤 현금 1만5천원만 챙기고 범행 장소에서 200m를 내려가다가 등산로 미끄럼방지용 멍석 아래 지갑을 숨긴 것으로 확인됐다.

지갑 안에 도서관 카드와 신용카드는 그대로 있었다.

정씨는 이날 오전 10시께 사패산에 올라 소주 1병을 마시고 3시간가량 잠을 잔 뒤 깨어나 범행했다.

그는 혼자 음식을 먹고 있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금품을 빼앗을 목적으로 뒤로 다가가 왼팔로 피해자의 목을 감아조르고 오른 주먹으로 머리를 2차례 때려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정씨는 충남지역에서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해 180만원을 번 뒤 지난 4월 의정부로 온 이후 24시간 만화방에서 기거하다 돈이 떨어지자 산에 올랐다.

만화방 이용 종일 요금은 1만4천원이고, 이날 수중에 남은 돈도 1만4천원 뿐이었다.

정해진 주거가 없고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이나 가족도 없던 정씨는 범행후 공공장소에서 잠을 잤으며, 버젓이 공사장 일용직 일을 찾아 돈도 벌었다.

그는 범행 당일인 7일 의정부 모 병원 로비에서 하룻밤을 자고 태릉으로 이동했다.

범행 이틀째는 마석으로 옮겨 공중화장실에서 하룻밤을 잤다.

9일 아침에는 인근 연립주택 건설 현장에 하루 투입돼 일당 9만 9천원을 받았다.

이 돈을 받고 춘천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 하룻밤을 자고 원주로 갔다.

범행 후 도주했던 정씨는 이튿날 오전 7시 10분께 등산객에 의해 시신이 발견되고 이 사실이 보도된 지 사흘째, 범행 나흘째 밤인 지난 10일 오후 10시 55분께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범행 이후부터 스마트폰으로 이번 사건 관련 기사를 계속 검색하다가 시신 발견, 현장에서 DNA 검출 등의 보도를 접한 뒤 압박을 받아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 원주시내 한 길가에서 자수 의사를 밝히고 배회하던 정씨는 약 1시간 반 뒤에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된 신발 발자국이 정씨의 것과 같고 DNA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정씨를 이번 사건의 진범으로 보고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DNA는 피해자의 목과 의류(상의 등쪽, 하의 왼쪽)에 밴 피의자의 땀 등에서 검출됐다.

경찰은 정씨의 강도살인 혐의 외에 피해자의 옷이 반쯤 벗겨져 있던 점과 현장에서 체모가 발견된 점을 토대로 강도행각에 앞서 성폭행을 시도하지 않았는지도 계속 추궁했으나 혐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돗자리에서 발견돼 성폭행 시도를 의심하게 했던 음모는 DNA 대조 결과 정씨의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서도 성폭행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옷을 벗기고 간 것은 그러면 쫓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그는 피해자가 사망한지는 미처 몰랐다고 했으나 압박 강도로 보아 충분히 사망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 걸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당시 피해자는 상의와 하의가 반쯤 벗겨진 상태로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으며, 신체가 노출된 부분은 가방과 모자로 일부 가려져 있었다.

박원식 의정부경찰서 형사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성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나, 죄를 가볍게 만들 의도로 거짓 진술을 할 가능성이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의자 정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오는 13일 오전 10시 30분께 의정부지법에서 열린다.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최재훈 기자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