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인구 늘면서 강력 범행 현장화…갈림길 등 CCTV 확충 필요"

등산로에서 잇따라 살인 사건이 발생, 등산객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야간 산행이나 나홀로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범죄가 이어지면서 조명과 폐쇄회로(CC)TV 등 방범시설을 확충하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의정부경찰서는 지난 8일 사패산 등산로에서 숨진 채 발견된 등산객 정모(55·여)씨가 1차 부검결과 피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씨의 시신을 부검해 목 졸림(경부압박)과 머리 출혈, 전신 타박상 등을 확인해 경찰에 통보했다.

누군가가 정씨를 목 졸라 살해했고 그 과정에서 머리 등을 다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등산로 입구 주변 CCTV와 현장 증거물을 분석하는 등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씨가 대낮에 변을 당했지만 범행 현장과 CCTV가 설치된 입구가 800m나 떨어진 탓에 그사이 수많은 등산객이 왕복해 용의자를 추리기 어렵고 정씨의 지인과 통화기록에서도 특별한 원한 관계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가 주로 탐문에 의존, 자칫 수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숨진 정씨를 처음 발견한 신고자는 "사패산이 집 앞이라 거의 매일 오르는데 현장을 목격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이 벌벌 떨리고 체온까지 상승하고 온몸이 후들거린다"고 말했다.

등산로 주변 주민 최모(52·여)씨는 "남편이 출근한 뒤 지인과 사패산에 가곤 하는데 간혹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갈 때도 있다"며 "이번 살인 사건 소식을 들은 뒤 무서워 혼자는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요 몇년사이 등산로 살인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건 중 하나가 됐다.

불과 열흘 전인 지난달 29일에는 사패산에서 7㎞가량 떨어진 수락산 등산로에서 등산객 A(64·여)씨가 일면식도 없는 김학봉(61)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졌다.

이 사건 역시 발생 초기 경찰은 강력팀 전원을 투입했으나 등산로의 입구가 많고 CCTV가 부족한 데다 용의자가 언제 등산로에 올라갔는지조차 알 수 없어 용의자 특정에 애를 먹었다.

수사가 장기화할 뻔했으나 김학봉이 당일 자수해 일찍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에는 경남 창원시 무학산 8부 등산로 인근에서도 등산객 B(51·여)씨가 살해됐다.

경찰 수사로 검거된 피의자 정모(47)씨는 정상에서 우연히 B씨를 보고 성폭행 충동을 느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2012년 7월에는 제주 올레길에서 40대 여성이 숨졌다.

강모(46)씨가 두산봉 밑 올레 1코스에서 이 여성을 보고 나무 뒤편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다.

경찰 출신인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선에서 근무할 때는 등산로에서 돈을 갈취하거나 시신을 암매장하고자 옮겨온 사건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강력 범행 현장이 되고 있다"며 "등산 인구가 늘면서 등산로에서 범행 표적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등산로 범죄 예방 대책으로 CCTV를 확충하고 노인 인구를 활용한 순찰 등을 제안했다.

김 위원은 "무엇보다 남녀를 불문하고 혼자 다니면 안 되고 등산로 갈림길에는 반드시 CCTV를 설치해야 한다"며 "노인 인구를 순찰에 활용하면 범죄 예방은 물론 일자리 창출, 자연보호, 산불예방 등의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범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연합뉴스) 김도윤 기자 ky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