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적자 운영…경기영어마을은 사실상 간판 내려
일부 영어마을 적자 불구 '저소득 교육복지' 호응

10여년 전 전국적으로 붐이 일었던 영어마을 일부가 만성 적자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지자체가 수요 예측과 실효성 검토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앞다퉈 무리하게 영어마을을 조성, 세금만 낭비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부 영어마을은 이미 문을 닫았고, 일부는 '영어전문교육'에서 벗어나 인재양성 기관, 평생·체험교육 기관 등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저소득층 교육복지 차원 등에서 운영한다 하더라도 적자 누적은 지방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되는 만큼 기능 전환이나 과감한 구조조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 변해야 살아남는다…기능 전환·구조 조정 모색

경기도 영어마을 개원은 전국 영어마을 붐의 출발점이었다.

경기도가 안산을 시작으로 파주, 양평 등에 영어마을을 개원하면서 전국 곳곳에 영어마을, 영어체험학습관, 국제화센터, 국제교육센터 등의 이름으로 유사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한때 경기도에만 10여개, 소규모 민간시설까지 포함해 전국적으로 50여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여러 영어마을이 '체험형 영어전문 교육시설'이라는 당초 설립 취지에서 탈피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영어마을은 문을 닫기도 했다.

경기도는 파주 영어마을과 양평 영어마을을 '미래 인재양성 교육기관'으로 전환키로 하고 지난달 28일 교육부, 한국과학창의재단,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등과 업무협약을 했다.

다양한 융합형 교육프로그램을 연구·개발 및 운영해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도는 조만간 '영어마을'이란 시설 이름도 바꿀 계획이다.

2004년 8월 안산에서 처음 문을 연 경기영어마을이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전국 영어마을의 효시인 안산 영어마을은 만성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개원 8년만인 2012년 12월 문을 닫았다.

8년 전 대전시 동구가 조성한 통학형 영어마을 '국제화센터'도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2008년부터 외부업체가 위탁 운영했으나 2010년 외국인 강사의 비행으로 각종 조사와 감사를 받은 데다 2014년 말에는 위탁 운영업체가 손을 뗐다.

이후 아직까지운영업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동구는 운영을 포기하고 매각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은 상태다.

서울시가 786억원을 들여 건립한 뒤 민간에 맡겨 운영 중인 영어마을 풍납캠프(2004년)와 수유캠프(2006년), 관악캠프(2010년)도 기능 전환을 추진 중이다.

3개 캠프 중 2곳의 기능을 2018년까지 창의체험·평생교육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인천시가 2006년 건립해 민간에 운영을 위탁한 '인천시영어마을'도 시의 지원 축소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시는 매년 30억원을 영어마을 운영비로 지원했지만, 재정난을 이유로 이를 점차 축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영어마을 이용 시민 부담은 지난해 12만원에서 올해 15만2천원, 2018년에는 19만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 전국 지자체 조성 영어마을 20여곳, 대부분 '적자 운영'

지자체가 조성해 운영 중인 영어마을은 전국적으로 2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마을 상당수가 운영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지자체가 만든 전국 영어마을의 정확한 경영현황 자료가 파악되지 않지만, 2012년 말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지방자치단체의 영어마을 운영현황과 향후 과제'란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22개의 지자체 영어마을 중 절반에 가까운 10개가 운영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역 10개 영어마을 중에는 6개가 적자였다.

적자는 대부분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메웠다.

경기도가 1천700여억원을 들여 만든 안산·파주·양평 3개 영어마을 중 파주 영어마을에서만 그동안 20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

역시 민간이 위탁 운영 중인 수원 외국어마을도 지난해 10억원가량의 적자를 냈고, 부산 사상구의 국제화센터도 2014년과 지난해 세월호 참사 및 메르스 여파로 소폭 적자를 기록했다.

영어마을의 적자 부담은 결국 해당 지자체의 몫이다.

그러나 운영적자에도 일부 영어마을은 현재 주민들의 호응 속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수원 외국어마을은 지난해 2만7천여명의 유치원생과 초·중학생이 다녀갔고,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이 조성해 2009년부터 운영하는 글로벌빌리지도 지난해 4만여명이 이용했다.

부산 사상구 국제화센터, 안산시가 만든 안산화정영어마을 등도 높은 이용자 만족도 속에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영어마을이 수익 창출이 아닌 저소득층 자녀 영어교육 지원 등 '복지' 차원에서 운영하는 측면이 강한 만큼 적자에도 계속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 전문가들 "영어마을, 시대 흐름 맞춰 꾸준히 변신해야!"

전문가들은 지자체 운영 영어마을이 적자에 시달리고, 결국 문을 닫거나 기능 전환을 하는 것은 미래 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 등 없이 영어마을을 무리하게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부는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시작한 것도 부실운영의 요인으로 꼽힌다.

사교육 시장 중심의 영어교육이 여전한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영어마을을 운영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영어마을 단기 입소교육 효과에 대한 의문 제기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교육프로그램 등도 운영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명희(50) 파주상상교육포럼 대표는 "10여년 전 영어마을 개원 초기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면서 입소 경쟁까지 붙었다"며 "그러나 애초 장기적인 관점에서 규모나 투자비용 등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공약 등으로 돈벌이에만 급급해 혈세만 축내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 목표를 새로 잡고,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12년 '지방자치단체의 영어마을 운영현황과 향후 과제'란 보고서에서 "지자체 스스로 지역 내 영어마을에 대한 체계적인 조직 및 경영진단을 해 수익성이 없는 시설 등에 대해서는 과감히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평생교육 부서 관계자 역시 "영어마을이 영어공부 동기부여 등 긍정적 측면이 많다"며 "다만, 복합 외국어마을 등으로 기능 전환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파주 영어마을 기능 전환을 추진한 경기도 관계자는 "경쟁력 약화 등으로 영어만을 교육하는 시설로 영어마을을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다양하고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으로 미래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이번에 탈바꿈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광호 노승혁 한무선 강종구 전지혜 이해용 김상현 이재림)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