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철도·인력공단도 하청업체에 퇴직자 떠넘겨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가 용역업체를 상대로 도를 넘은 ‘갑질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발생 때 원상복구와 손해배상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갑질 계약’과 함께 메트로 퇴직 직원을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직무대행(사진)은 3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특별업무보고에서 “2011년 은성PSD 설립 당시 전체 인력 120명 중 90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전체 인력의 75%가 현장 업무와는 무관한 고연봉·고령의 서울메트로 직원으로 채워진 것이다.

은성PSD는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씨(19)가 소속된 용역업체다. 정 사장직무대행은 “퇴직자 등을 빼고 은성PSD에 남은 서울메트로 출신은 36명”이라며 “이들의 평균 연봉은 5100만원가량”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뿐 아니라 다른 전동차 정비업체에도 갑질 계약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열차 정비용역 입찰 참가업체들에 ‘인력 배치는 서울메트로 외주화 참여 희망직원을 우선 배치하고 부족하면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인력으로 충원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의 ‘슈퍼 갑질’은 서울메트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퇴직 인력을 자회사에 취직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5~8호선의 전동차 정비 업무를 맡은 서울도시철도ENG 직원 174명 가운데 서울도시철도 퇴직자가 27명에 달했다. 이들은 서울도시철도에서 승무·사무직으로 일하다가 정비 자회사로 옮겼으며 새로 채용된 직원들보다 연 4000만원가량의 금전적 혜택을 더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교통공사도 은성PSD와 정비용역계약을 맺으면서 고장 건수·시간에 비례해 용역비를 깎도록 한 ‘갑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계약서에는 고장 건수나 시간 기준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예정 월 용역비를 삭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앙정부의 산하기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자격검정 업무를 재위탁받아 시행하고 있는 한국기술자격검정원이 대표적이다. 2011년 설립된 기술자격검정원은 인력공단의 자격검정 업무 중 정보처리, 한·양식 조리, 제과제빵, 미용사 등 수험생이 가장 많은 12개 자격증 사업을 재위탁받은 사단법인이다.

고용부는 사업주 직업훈련 업무를 인력공단에 넘기면서 공단 업무를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설립했다고 했지만 고용부와 인력공단 퇴직(예정)자들의 일자리 마련책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국가자격시험의 유일한 수탁기관인 인력공단이 업무를 제3의 기관에 재위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국가기술자격법) 근거도 없다.

설립 당시 자격검정원 임직원 60여명 중 40명이 고용부와 인력공단 출신으로 채워졌다. 인력공단 출신 직원들은 소속을 자격검정원으로 옮기면서 퇴직금 외에 많게는 2억원에 가까운 명예 퇴직금까지 받았다. 인력공단 노동조합 간부의 자녀도 자격검정원에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백승현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