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만 문화재 지정 형식적 관리…소멸 가속
"원형과 다른 엉터리 복원은 훼손, 안타깝다"

돌·바람·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로 불리는 제주.
'삼다' 가운데 특히 돌은 제주의 산과 들, 바다 어디를 가든 곳곳에 널려 있어서 농사·신앙·방어·생활도구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쓰이며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제주밭담과 함께 제주의 대표적인 돌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방사탑(防邪塔)과 도대불(등명대·燈明臺)이 오랜 세월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방사탑은 마을의 허(虛)한 곳을 막아 액운을 없애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세워진 탑이며, 도대불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제주만의 옛 등대다.

◇ 문화재 지정은 일부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
제주시 내도동 바닷가에는 자연석을 쌓아올린 방사탑 1기가 남아 있다.

과거 북쪽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禍)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내도동 지역에 6기의 방사탑을 만들었으나 대부분 허물어져 사라졌고 유일하게 1기만 남았다.

2m가 채 안 되는 높이의 내도동 방사탑은 둥그런 자연석을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졌고 탑 위에 길쭉한 현무암이 놓여 있다.

처음 축조됐을 당시 둥그스름하게 높이 쌓아 올려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주 4·3사건 당시 담을 쌓거나 마을 재건 과정에서 6기의 방사탑 돌들이 하나둘 사용되면서 방사탑 자체가 없어졌고, 그나마 남은 방사탑마저 예전의 모습을 잃게 됐다.

내도동에 유일하게 남은 방사탑 1기는 제주도 향토유형유산 제10호로 지정됐으나 현재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굴러 떨어진 돌들과 쓰레기 더미와 함께 방치돼 있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구몰동에 있는 방사탑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마을 '지새나못'이라는 연못 북동쪽으로 난 샛길 100m 지점에 있는 방사탑은 현재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됐다.

지역 주민과 전문가 등의 말에 따르면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방사탑 반쪽 이상이 허물어졌고 나머지 반쪽은 밭담의 일부로만 남게 됐다고 한다.

반대편인 연못 북서쪽 지점에 남아 있는 방사탑은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나 수풀이 탑의 윗부분을 관을 씌운 듯 덮고 있다.

또 제주문화유산답사회가 제주 곳곳의 방사탑을 답사한 결과 한경면 청수리에 있는 3층 구조의 방사탑의 경우 밭 주인에 의해 허물어져 그 자리에 농기구 보관을 위한 간이창고가 들어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로 등록돼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토지주가 방사탑을 없애도 제재할 근거가 없다.

현재 제주에는 50기 안팎의 방사탑이 남아 있으나 이 중 17기(제주시 11기·서귀포시 6기) 만이 제주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나머지 방사탑은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은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방사탑 중 일부는 예전에 허물어졌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다시 복원되는 경우도 있다"며 "원형에 대한 제대로 된 고증 없이 복원되면서 자연미를 잃어버리거나 전혀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어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체계적 관리 시급
도대불은 방사탑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도시·환경계획전문가 이덕희씨가 쓴 '제주의 도대불'에는 모두 17개의 도대불이 있는 것으로 소개됐으나 해안도로 개설과 방파제 공사 등으로 절반 가까이 소실됐고, 현재 복원된 것을 포함해 10∼13기 정도가 남아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원형 그대로의 도대불 중 단 한 기도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 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의 도대불은 원형을 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도대불은 조선시대 때 세워진 방어유적인 연대를 마을 사람들이 일종의 등대로 재활용한 것이었다.

19세기 이후 연대가 제 기능을 상실하자 자연스럽게 등대의 역할로 기능이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복원 과정에서 두 유적이 분리돼 연대에서 50m 떨어진 바닷가 인근으로 옮겨졌고 이마저도 기계로 반듯하게 자른 돌을 쌓아 만들어 자연미를 잃었다.

서귀포시 보목동 포구에 있는 도대불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상단부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불꽃모양의 커다란 조형물이 올려져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대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만든 것이겠지만 이는 훼손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관광객들도 조잡한 조형물로 인해 문화유적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흔하디흔한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생활문화와 어업문화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방사탑과 도대 불의 의미와 가치는 매우 크다"며 이들 문화유적은 제주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탄생한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문화적 가치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 더욱 빛나게 된다고 강조하며 "현재 남아 있는 방사탑과 도대불이 문화재로 지정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b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