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착 비리 막는다고 전자입찰 도입했더니 유령업체 수십개 만들어 낙찰
밥값 부풀리기·뒷돈 관행 여전…버려야 할 식재료 써 각종 세균 득실


학교급식을 둘러싼 각종 비리가 진화하며 저질·불량 급식 우려를 높이고 있다.

교육·사법 당국은 교육 현장의 고질인 급식비리에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엄단한다는 입장이지만, 업자들은 교묘하게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아이들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 진화하는 급식비리…'유령업체' 수두룩

과거 급식비리는 일선 학교가 급식업체와 식자재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학교장 등이 리베이트를 받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보완책으로 급식업체 선정을 조달청의 전자입찰시스템을 통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비리가 거의 사라졌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었다.

최근 급식비리는 전자입찰의 허점을 노린 '지능적 범죄'와 '전통적인 유착 비리'가 공존하는 양상이다.

추첨식으로 진행되는 급식업체 선정 과정에서 유령업체 여러 곳이 전자입찰에 참여해 낙찰률을 높인 업자들이 지난 11일 경찰에 무더기 적발됐다.

경찰이 입찰방해 혐의로 학교급식업체 대표 12명을 입건했는데, 이들은 유령업체 35곳을 만들고 다른 업체 19곳에 명의를 빌려주는 수법으로 전자입찰에서 낙찰받을 확률을 높이는 새로운 수법을 이용했다.

조사 결과 이들 학교급식업체는 수십 개의 유령업체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수법으로 최근 2년 간 2천600여 차례 입찰에 참여해 무려 529억원의 납품계약을 낙찰받았다.

학교급식 유령업체는 5∼10평 남짓의 사무실을 임대, 냉장·냉동고 등 허가에 필요한 최소 시설만 갖춘 채 직원도 없고 평소에는 사무실 문도 닫고 있었다.

유령업체가 낙찰받은 학교급식은 해당 회사를 세운 원래 급식업체가 실제 진행했다.

◇ 밥값 부풀리기·뒷돈 관행 등 유착 비리도 여전…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 몫'

지난 3월에는 부산의 사립고교의 식자재 비용을 부풀려 거액을 빼돌린 식자재 납품업체 대표와 직원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학부모로부터 받은 급식비 117억원 가운데 18%가량인 21억원을 챙겼다.

학교 급식소 계약 당시에는 급식비의 65%를 식재료비로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 51%만 사용했다.

해당 학교의 이사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달 경찰에 적발된 경남의 한 고교 행정실장은 서류상 납품량을 부풀려 대금을 지급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6차례에 걸쳐 760만원을 횡령했다.

경남의 한 식품판매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되지 않은 무허가업체였지만 최근 2년 간 버젓이 학교에 식자재를 납품해 24억7천만원을 챙겼다.

문제는 이런 비리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깨지거나 분변에 오염돼 폐기해야 할 불량 계란을 재료로 학교급식을 만들어 납품한 업자 등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6개월 간 폐기 대상 계란 8t을 액상계란 형태로 공급받아 계란찜, 계란탕, 계란말이, 만둣국, 수제 돈가스, 스모그햄전, 추억의 도시락 등을 만들어 대구의 중학교 2곳과 고교 5곳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적발된 불량 계란에서는 세균 검사 결과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과 기준치 37배가 넘는 대장균군이 검출돼 학부모들을 경악케 했다.

◇ '유령업체' 못 걸러내…"관계기관 공조 시급"

급식비리를 막기 위해 도입한 입찰제를 흔드는 유령업체 문제는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일선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수사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납품만 잘되면 교육청 차원에서 조사를 하기 어렵고 입찰 당시 유령업체를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도 따로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납품업체 인허가를 내주는 주체가 지자체인 만큼 지자체와 긴밀히 공조해 대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급식과 관련해 거래금액 2천만원 이하의 경우는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 가능하고 경쟁입찰에서도 학교장의 의지가 중요한 탓에 아직도 유착관계가 싹 틀 여지가 있다.

각종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사립학교는 끊이지 않는 급식비리의 주무대다.

사립학교법의 보호 속에 각종 비리에 연루된 재단 관계자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거나 족벌 사학의 경우 이사장의 가족들이 자리를 돌려 앉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육청 감사 결과 비리가 드러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이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은 25일 "일부 사학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학교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여전해 급식을 비롯해 다양한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아이들 먹거리와 관련된 문제는 관계기관이 최우선적으로 협력해 위반업체를 영구 퇴출하는 등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오태인 차근호 박정헌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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