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24일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며 “많은 국민이 온라인 대중공개강좌 사이트 케이무크(K-MOOC)를 통해 경제학에 쉽게 입문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학입문’ 강의 동영상을 이달 초 케이무크에 올렸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24일 “인기영합주의적 정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다”며 “많은 국민이 온라인 대중공개강좌 사이트 케이무크(K-MOOC)를 통해 경제학에 쉽게 입문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학입문’ 강의 동영상을 이달 초 케이무크에 올렸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65)은 ‘혁신 전도사’로 불린다. 총장 재임 때인 2013년 인천 송도의 연세대 국제캠퍼스를 아시아 최초로 기숙형 대학(RC: residential college)으로 꾸몄다. 2014년엔 오랜 단일호봉제를 깨고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도입했다. 서울 신촌캠퍼스 중앙을 관통하는 백양로를 46년 만에 ‘차 없는 거리’로 바꾼 것도 그의 추진력 덕분이었다.

총장 임기(2012년 2월~2016년 1월)를 마치고 지난 2월 교수 신분으로 돌아온 그가 이번엔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라는 신개념 수업을 들고 왔다. 개강하기 전 수십시간 동영상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젊은 교수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에 노(老)교수가 “한국 교육의 혁신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정 전 총장을 24일 신촌캠퍼스에서 만났다. 경제학부 선생님으로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송도 국제캠퍼스에 플립 러닝을 구현한 ‘거꾸로 교실’을 연 것이다. 올 1학기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학입문 강의에서다.

‘거꾸로 교실’은 일방적인 강의 위주의 기존 수업과 달리 토론을 중시하는 수업 방식이다. 교수가 사전에 강의 동영상을 올려놓으면 학생들이 미리 보고 과제물을 해온 뒤 강의실에서는 발표와 토론만 한다. 미국, 싱가포르 등 교육 선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최신 학습법이다. 연세대 전체 학부 강의 3000여개 중 ‘거꾸로 교실’이 0.5%(16개)에 불과할 정도다.

정 전 총장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학생들이 집에서도 미국 하버드대 강의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대”라며 “강의실은 교수가 지식과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공간에서 각 학생에게 맞춤화된 배움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교육 실험’을 위해 지난 1~2월 22시간 동안 홀로 스튜디오에서 강의 영상을 녹화했다.

‘거꾸로 교실’은 많은 교수에게 아직은 부담스러운 도전이다. “수업시간과 별개로 시간을 내 강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검토해야 해 수업 준비 시간이 2~3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정 전 총장의 설명이다. 교수의 역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도 교수들이 수업 혁신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많은 교수에게 정착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의 실험에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교수만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듣고 토론할 기회가 열려서다.

그는 “동료 학생의 발표를 들으면서 독창적인 문제의식, 기발한 해법 등에 지적 자극을 받는다는 수강생이 많다”고 말했다. ‘경제학입문’ 강의 동영상은 이달 초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사이트 ‘케이무크(K-MOOC)’에 올라갔다.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정 전 총장은 “경제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시장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국가 경제가 성숙해진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자이자 교육행정가인 정 전 총장은 “5년째 계속되는 반값등록금 규제로 고등교육이 하향평준화되고 있다”며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고언을 쏟아냈다. 그는 “교수 연봉이 동결돼 뛰어난 학자들이 학교 대신 기업이나 사설 연구소를 택하고 있고 교육·연구·시설 등에 대한 투자도 정체상태”라며 “해외 명문대 총장들에게 등록금 규제를 설명했더니 ‘그런 규제 속에서 버티고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올해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정 전 총장은 “사회를 진단하고 중심을 잡아줄 전문가 집단인 가칭 ‘50인의 지식인’ 모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50대 중반 내외의 교수들 중 뜻을 같이 하는 50여명을 모아 정책 제언 등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