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는 나의 천직…힘이 있는 한 달리겠다"
‘경마 대통령’ ‘살아있는 전설’ ‘경마장의 슈퍼맨’…. 경력 30년의 기수 박태종(51·사진)에게 붙은 별명이다. 1987년 경마계에 입문한 박 기수가 국내 첫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상경, 택시기사가 되려 했다. 우연한 기회에 차 대신 말 등에 올라탄 그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기록을 세웠다. 박 기수는 “기수는 나의 천직”이라며 “힘이 남아있는 한 힘껏 달리겠다”고 말했다.

22일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박 기수는 지난 21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에서 열린 제3경주에서 경주마 ‘강호천년’을 타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키 150㎝의 ‘작은 거인’이 세운 개인 통산 2000승 대기록이었다.

박 기수는 2004년 한국 경마 최초로 1000승을 기록했다. 5년 뒤인 2009년에는 1500승을 거뒀다. 이후 체력 부담과 대기록 달성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2000승 고지를 밟을 때까지 7년이 걸렸다. 51세의 그는 기수 중 최고참이다.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30년째 현역 기수로 달릴 수 있었다. 그는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밤 9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30분 이상 운동을 했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택시기사였다. 서울에 올라와 이모부 채소가게에서 오토바이나 용달차를 끌고 배달을 도왔다. 어느 날 이모부가 서울 마포 마사회 지점 근처 식당에 배달을 갔다가 기수후보생을 모집한다는 벽보를 봤다. 박 기수는 이모부의 권유로 자동차 대신 말 위에 올라탔다. 그는 “기수가 된 순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나의 천직이라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1999년에 낙마 사고로 척추압박골절상을 입고 3개월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이때 많은 이들이 “박태종의 기수 생활에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재활에 성공했다. 유혹의 손길도 있었다. 돈 봉투를 내밀며 승부조작을 요구하는 이들이 그에게 접근했다. 단호하게 그들을 뿌리친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적이 없다. 그는 “과거 경마는 도박에 가까웠지만 최근에는 가족들이 즐기는 레저스포츠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박 기수의 전력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기수로서 나의 목표는 2000승을 달성하는 게 아니다”며 “힘이 있는 한 끊임없이 경주에 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