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인근 공중화장실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정치인들이 강력 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19대 국회에선 민생치안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데이트폭력방지법’이 대표적이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129개 법안 중에 민생치안 관련 법안은 3건에 불과했다. 풍속업소 단속 때 압수한 기초과세자료를 국세청에 제출하도록 한 ‘풍속업소법 개정안’과 경찰대에 치안대학원을 설치하는 ‘경찰대법 개정안’, 눈이 한쪽만 보이는 단안장애인의 1종 보통면허 취득을 가능하게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자동폐기된 경찰청 소관 법안만 214건에 달했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남동구갑)이 지난 2월 발의한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이 법안에는 데이트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판단으로 가해자를 격리시킬 수 있는 ‘긴급 임시조치’ 규정이 들어 있어 데이트폭력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데이트폭력 발생 건수는 7692건에 달했지만 예방책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데이트폭력방지법은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 관계자는 “발의된 지 오래된 법안이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한 경찰서 간부는 “데이트폭력이 아무리 심각하다고 말해도 국회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달라질 게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발의된 ‘범죄예방기본법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은 범죄 예방을 위한 도시환경 디자인 ‘셉테드(CPTED)’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경찰의 부족한 수사력을 보완하기 위해 사설 탐정업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은 ‘민간조사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과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도 폐기됐다.

경찰 내부에선 20대 국회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찰 출신 국회의원이 19대 국회에선 4명에 그쳤지만 20대에선 8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한 지구대 경찰관은 “일선 경찰의 어려움을 잘 아는 순경 출신인 이동섭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