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명 교수 "살균제에 1천100만명 노출됐을 것"
법학 교수 "기업 자체를 처벌해야 예방할 수 있어…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어린이 1만5천명을 포함해 우리나라 인구 30%가 독성물질이 있는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의학 교수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환경보건학회와 환경독성보건학회가 개최한 '제2차 환경독성포럼'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전국 만 7세 아동 약 1천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1.3%인 411명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보호자와 가족 등을 포함하면 전체 국민 30%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질병은 과거 몰랐던 질병"이라며 "의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만 폐 질환 이외의 다른 질병과도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물고기인 '제브라피시'를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은 구아니딘 계열의 살균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 독성실험을 한 결과 70분 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흡입실험은 아니지만, 폐 이외의 장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라며 "비염, 동맥경화, 비만, 지방간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러한 질병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를 밝혀내 진단을 내려야 하지만 의료영상자료나 임상 자료가 부족해 어렵다고도 토로했다.

서울대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 역시 3차례 역학조사의 가습기 살균제 노출 비율을 고려하면 약 1천100만명이 노출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독성의 양상과 중증 폐 질환 발생 등이 밝혀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제대로 규명돼야 한다"며 "정부, 시민단체 등이 함께 피해자를 생각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대 법학대학원 박태현 교수는 정부 스스로 당시 법이 미비했음을 인정하고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단순히 소비자-기업 간의 민사 문제로 볼 수 없다며 수백명을 죽인 제품이 시장에서 버젓이 팔린 것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 사법구제시스템에서는 기업이 자기 책임을 부인할수록 유리하다"며 "입증책임은 소비자가 아닌 기업에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신현우(68) 전 대표를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경영최고책임자 등의 미필적 고의를 증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기업 자체를 처벌하는 법률이 없어서 사람을 대상으로 미필적 고의 유무를 따진다"며 "사람만 처벌하면 그가 회사에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정연만 환경부 차관은 "포럼에서 나온 좋은 의견을 정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반영하겠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p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