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농성장으로 변한 서울시청…박원순의 자충수?
12일 서울시청 정문. 경찰 수십명이 겹겹이 벽을 쌓고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뇌성마비 등 발달장애를 앓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서울지부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가 시청 로비를 점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시청 진입을 시도하는 장애인단체 회원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 사이에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날 오전 시청은 일반 시민의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오전 11시30분부터는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다. 시청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장애인단체는 지난 4일부터 1주일 넘게 시청 후문을 점거한 채 농성 중이다. 요구사항은 서울 25개 모든 자치구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센터를 한꺼번에 설립해달라는 것. 발달장애인 저축연금 조성 및 거주서비스 지원에 각각 1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달라고도 했다. 이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데 2조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장애인단체와 부모들의 요구조건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시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평생교육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라며 “실무자가 장애인단체와 협의하려고 하는데도 공무원을 믿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장애인단체와 부모들은 실무자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박원순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청 로비를 불법 점거하려 하면서 막무가내로 예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시위대의 이런 행태는 박 시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는 2011년 10월 취임한 뒤 시청을 점거하는 등의 불법 시위를 사실상 용인해 왔다. 박 시장은 “(떼 쓰는 시위가)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말하기도 했다.

소통을 강조한 것이지만 불법 시위를 묵인하는 듯한 박 시장의 발언은 시 공무원에게 ‘지침’이 됐다. 청사 로비를 점거한 채 구호를 외치고 소란을 피워도 공무원들은 이들을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해 3월에야 “청사 점거농성을 벌이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뒤늦게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소통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법 테두리를 벗어난 ‘떼쓰기 식 시위’까지 소통의 범주에 넣는 것은 무리다. 서울시가 여론을 의식해 장애인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떼 쓰면 통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