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조율 착수…존 리·거라브 제인 등 핵심인물 본격수사
유해제품 판매 강행·증거은폐 의혹…英본사 개입 여부 확인 관건

가습기 살균제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품 개발·제조에서 판매 부문으로 옮겨가면서 주요 외국인 임원이 조만간 소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이들은 신현우(68) 옥시 전 대표와 더불어 살균제 사망 사건의 책임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영국 본사의 역할을 규명할 '열쇠'로 꼽힌다는 점에서 수사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8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이르면 이번주 중 문제의 살균제가 한창 판매된 2000년대 중·후반 옥시 경영을 책임진 주요 외국인 임원의 소환 일정 조율에 들어간다.

검찰은 당시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한 외국인 임원 7∼8명을 우선 소환 대상자로 분류했다.

사내이사나 대표이사로 재직해 회사 안팎 사정을 잘 아는 인물들이다.

검찰은 앞서 조사한 신 전 대표는 흡입독성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제품을 개발·제조·판매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곧 조사할 외국인 임원들은 호흡곤란·가슴통증 등 부작용을 호소하는 민원을 접수하고도 판매를 강행하거나 2011년 중순 사태가 불거진 뒤 증거 은폐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특히 미국 국적의 존 리(48) 전 대표와 인도 출신의 거라브 제인(47) 전 대표의 역할에 주목했다.

한국계인 존 리 전 대표는 신 전 대표에 이어 2005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5년간 옥시 최고경영자로 재직했다.

이 시기는 살균제 판매고가 가장 높았던 때다.

판매량이 많은 만큼 피해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옥시 대표가 제품 출시·판매 등 경영 전반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을 파악했다.

존 리 전 대표 역시 유해제품 판매를 최종 승인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옥시측이 제때 제품 수거 및 판매 중단 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제품 개발을 맡은 옥시 연구소의 전·현직 연구원들은 검찰에서 "CEO(최고경영자)에게 부작용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유해성 실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라브 제인 전 대표는 존 리 대표에 이어 2010년 5월부터 2년간 경영을 책임졌다.

그는 증거은폐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옥시가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법인 성격을 바꾸고 서울대 등에 의뢰한 보고서 중 불리한 것을 은폐·조작하는 등 책임 회피로 의심되는 시도가 이뤄진 시점도 그가 대표로 있던 때다.

보고서 은폐·조작 의혹이 불거진 서울대 조모(57·구속)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서도 대표적 사망 원인인 '폐섬유화'가 거론되지 않았을 뿐 다른 병변의 위험성은 지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런 위험성을 옥시의 국내 경영진뿐 아니라 본사에서도 공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교수팀은 2011년 10∼12월 석달간 임신한 쥐를 활용해 PHMG가 뱃속 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는 생식독성 실험과 일반 쥐를 대상으로 한 흡입독성 실험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조 교수팀은 그해 11월 생식독성 실험 결과를 중간보고 형태로 옥시 측에 먼저 알렸다.

임신한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결과는 옥시 측의 송사와 법률 사안을 맡은 법무법인 담당자와 영국 본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2월에는 조 교수팀의 흡입독성 실험 결과도 전달됐다.

폐질환과 살균제 성분 사이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간이나 신장 등의 병변 가능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업계에선 이런 경고성 내용을 전달받고도 외국인투자회사가 CEO의 지시나 승인 없이 실무진 차원에서 독단적으로 판매를 결정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조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영국 본사와 한국법인을 잇는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한 점도 주목된다.

이들은 수시로 본사에 경영 현안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본사가 유해성을 알고도 판매를 강행했는지, 제품 유해성·증거 은폐에 관여했는지 등도 결국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될 것으로 보여 향후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최송아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