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 김호기 교수, 형사정책연구원 논문서 주장
"유해한 제품 제조자, 제조·판매이후에도 결함 감시할 의무"

막대한 피해를 낸 가습기 살균제처럼 유해한 제품의 제조자에게는 일반 제품보다 훨씬 큰 결함 감시 의무가 있으며, 이를 소홀히 했다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호기 교수는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형사정책연구'에 실은 '개발위험의 항변과 형법적 제조물 책임 - 가습기 살균제 등 대량 생산돼 사용되는 일상생활용품의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위해성 있는 제품의 제조자는 적극적인 대응조치를 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개발위험'은 제조 당시 제품의 위해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정도로 과학지식이 축적돼 있지 않아 결함이 있는 제품이 제조, 유통될 위험을 뜻한다.

다수 국가에서는 이런 개발위험을 인정해 제품의 결함이 발견됐을 때 제조자의 책임을 면제해준다.

우리나라 제조물책임법도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을 공급한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면책사유로 인정한다.

김 교수는 개발위험이 현실화하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의 인정 여부와는 별개로 제조자에게 어떤 형사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를 화두로 던졌다.

그러면서 제조물책임법 4조 3항에 제시된 '계속 감시의무'를 제시했다.

제조자가 제품을 제조, 판매한 이후에도 결함 여부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결함을 발견하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다.

김 교수는 이것이 소비자의 법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형법적 작위의무(적극적 행위를 할 의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제품에 사용된 성분이나 기술이 새로운 것이거나 잠재적으로라도 인체에 유해하게 작용할 수 있다면 제조자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감시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경쟁력을 위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성분이나 기술로 제품을 만들 때 소비자는 아무 대응 수단 없이 법익침해의 위험성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김 교수는 이럴 때 제품에서 비롯되는 위험 창출·실현 과정이 제조자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보고 제조자를 '위험창출자'로 표현했다.

그래서 보다 높은 수준의 감시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제품의 위해성이 밝혀지면 제조자는 현실에서 법익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최근 형법적 제조물책임 인정 여부가 문제 되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대량생산돼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일상생활용품은 예컨대 제품의 위해성을 단순히 제조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보를 게시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조자가 현재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개별적으로 추적해 제품의 위험성을 경고를 하는 것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곤란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