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 설문…40대 그들의 고민은?

인구 비중 가장 큰 ‘중추’, 10년 후 한국 경제 ‘정체·하락’ 67.2%

[40대 리포트] 'F세대'의 절규 "나는 저소득층" 49.8%…희망 잃은 40대
1967년생부터 1976년생은 올해 대한민국의 40대다. 이들은 현재 연령대별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며 일터와 가정에서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앞선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에코 세대’에 끼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들을 일컬어 ‘잊힌 세대’라고 해서 ‘F(Forgotten)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한경비즈니스는 4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40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직장에서는 핵심 중간 관리자인 차·부장 등으로 일하는 동시에 가정에서는 학부모인 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들여다봤다.
[40대 리포트] 'F세대'의 절규 "나는 저소득층" 49.8%…희망 잃은 40대
2015년 말 대한민국은 때아닌 복고 열풍에 휩싸였다. 케이블 방송 tvN에서 방영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때문이다.

4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국민 드라마’로 떠오른 응팔의 40대 시청률은 최고 23%를 돌파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지닌 40대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958년생 개띠를 중심으로 1955년부터 1963년까지의 세대를 베이비붐(baby boom) 세대라고 일컫는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인 1979~ 1992년생 세대를 일컬어 에코(echo) 세대라고 부른다.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 세대 사이에 ‘응팔’에 열광한 오늘날의 40대가 있다.
[40대 리포트] 'F세대'의 절규 "나는 저소득층" 49.8%…희망 잃은 40대
◆ 기회·좌절 공존하는 ‘잊힌 세대’

한경비즈니스는 대한민국 4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직장에서는 중간 관리자급인 차·부장으로 일하면서 가정에서는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인 이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살펴봤다.

유엔이 발간한 ‘세계 인구 전망 2015년 개정판’에 따르면 국내 중위 연령은 40.6세로 나타났다. 중위 연령은 전체 인구를 연령에 맞춰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운데에 자리하는 값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허리가 바로 40대다.

이처럼 직장과 가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40대이건만 오늘날의 40대는 소위 ‘F세대’로 불린다. ‘잊힌’이란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인 ‘포가튼(Forgotten)’의 영문 첫 글자인 F를 빗댄 말이다. 베이비붐 세대보다 50여만 명 많아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기도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 세대에 끼여 딱히 주목을 받지 못한다.

박경숙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학 측면에서 본 이 세대의 특징은 가족계획의 영향으로 출생이 많고 형제가 많은 다자녀 세대”라며 “근대적 교육관에 의해 대중화된 고등교육의 기회가 본격적으로 주어진 세대”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1990년대 접어들어 성장과 불안이 공존하기 시작했다”면서 “성장의 기회가 아직까지 열려 있고 생애 이동의 기회를 향해 돌진함과 동시에 거기서부터 오는 좌절감을 느끼는 세대”라고 덧붙였다.

고정희 시인은 ‘사십대’란 시에서 40대를 일컬어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직장에선 임원 눈치 보랴, 부하 직원 챙기랴 위아래로 치이고 가정에선 자녀 뒷바라지에 자신을 돌볼 틈이 없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다 보니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40대 리포트] 'F세대'의 절규 "나는 저소득층" 49.8%…희망 잃은 40대
◆‘IMF 악몽’ 체험…청년 실업난에 공감

이번 설문에 참가한 40대는 자신이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49.8%, 중산층은 49.2%다. 스스로를 고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강원·제주에 사는 40대의 70.8%가 저소득층이라고 답해 가장 비관적이었고 부산·울산·경남에 사는 56.8%는 중산층으로 여겨 가장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체 응답자의 60.2%는 회사원이었다. 이어 무직이 12.9%, 자영업자 9.3%, 프리랜서 6.7%, 전문직 5.7%, 주부 3.1%, 파트타이머 2.1%순이다. 전문직과 회사원을 포함한 비율은 남성이 75.2%, 여성은 56.6%를 차지했다.

F세대는 민주화 운동의 막차를 탄 세대이자 세계화의 혜택을 본 세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자 이들은 이념 전쟁으로부터 벗어났다. 또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너도나도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들 세대가 학업을 마치고 취업할 무렵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외환 위기를 맞았고 2000년대 초반엔 ‘정보기술(IT) 버블’을 겪은 시기였다. 특히 40대 후반은 사회생활 초창기에 역사적인 전환점을 몸으로 경험해야 했다.

40대 초반은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IT를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던 시기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보다 앞선 베이비붐 세대가 1980년대 후반 저유가·저금리·저달러라는 이른바 ‘3저(低)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것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이런 F세대는 오늘날의 취업 시장을 어떻게 바라볼까. 매우 심각하거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89.4%가 20대 청년 실업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했다. 심각하지 않거나 전혀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이는 1.3%밖에 되지 않았다. 사회생활 초창기 시절을 전후해 겪었던 외환 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나 남의 일처럼 생각하진 않았다.

한때 IMF 한파를 이겨낸 이들의 요즘 직장 생활은 어떨까.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직장 생활의 만족도가 ‘보통(55.3%)’이라고 답했다. ‘별로(22.4%)’이거나 ‘매우 별로(4.3%)’라고 답한 비율까지 합치면 40대 직장인 중 열에 여덟은 말 그대로 그냥 회사에 다닐 뿐이다.

예전과 달리 직장에 애착을 갖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치관이 변해서다. F세대는 직장에서의 지위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꿈꾼다.

◆ 직급보다 직장 내 영향력 낮다 30.5%

그렇다고 직장에서의 고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직장 내에서의 영향력이 직급보다 낮기 때문에 불만족스럽다. 자신의 직급에 걸맞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이는 48.1%인 반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도 40.2%나 됐다.

직장에서 40대는 위로 베이비붐 세대인 상사를 모시고 아래로는 에코 세대인 부하 직원을 두고 있다. 그 둘 사이에 끼여 위아래로 치이는 게 오늘날의 F세대다.

F세대의 바로 직전인 베이비붐 세대가 바라본 40대는 철없는 막냇동생처럼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는 개인과 가정을 희생해 가며 산업 근대화를 일궈 낸 주역이자 민주화운동을 위해 길거리로 뛰쳐나간 세대다. 그런 베이비붐 세대의 기준에서 봤을 때 조직보다 개인과 가정을 우선 시하는 F세대가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F세대보다 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에코 세대는 경직된 조직 문화로부터 자유롭다. 에코 세대는 각자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자기주장을 서슴없이 펼친다. 상명하복 식의 기업 문화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F세대가 에코 세대를 다루기 힘든 이유다.

F세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가 위축돼 기업에서 구조조정 얘기가 나올 때면 늘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는 현실이 40대 직장인의 불안감을 투영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에만 ‘올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은퇴)’이란 자조 섞인 농담에 쓴웃음만 짓는 F세대다.

40대 직장인만 힘든 게 아니다. 40대 전업주부 여성의 삶도 팍팍해졌다.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온 전업주부 수는 2014년 처음으로 줄어들었고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감소 추세다.

올해 2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 중 육아 부문에서 10만4000명이 감소했다. 지난해 708만5000명으로 집계된 전업주부 수는 불과 1년 사이에 5만8000명 줄었다. 반면 여성의 고용률은 2000년 47%에서 2015년 49.9%로 올랐다. 그만큼 많은 전업주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의미다.

이처럼 남녀 불문하고 힘겨운 삶을 사는 F세대는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갖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정체하거나 비관적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총 30.4%가 10년 후 국내 경제 성장이 '약간 하락'하거나 '급하락' 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만8338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3만달러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응답한 비율은 36.8%를 차지했다.
[40대 리포트] 'F세대'의 절규 "나는 저소득층" 49.8%…희망 잃은 40대
◆ 재충전 필요한 고단한 중년

만약 한 달간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여행(85.1%)을 떠나겠다고 답했고 이어 휴가나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답변이 7%를 기록했다. 무려 92.1%가 쉬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년 근로시간 1~2위를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 40대 직장인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 어느 세대보다 재충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F세대다.

1년 중 실제 여행을 떠나는 횟수는 연 1회가 34.3%를 기록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연 2회 29%, 연 3회는 15.2%로 집계됐다. 연 4회나 연 5회 여행을 떠나는 비율은 7.1%와 8.5%에 그쳤다.

지난해 7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2010~2013년 한국 국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81.3세로 나타났다.

이는 1970~1974년 62.7세에 비해 40년 만에 18.6세 증가한 수치다. 북아메리카(79.1세)나 유럽(76.1세)보다 각각 2.2세, 5.2세씩 높은 수준이다. 평균수명대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40세는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이제 막 후반전에 접어든 셈이다.

93학번으로 F세대에 속하는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40대는) 부모의 입장이 되다 보니 현실에 적응해야 하지만 과거의 젊음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며 “완전한 자유인도 아니면서 동시에 부모로서의 첫 단계를 겪는 등 위아래 세대와 확연한 차이가 있는 유연한 세대”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김현기 기자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