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부랴부랴 휴가계획 짜봤지만…항공권·펜션 예약 끝…"아빠가 미안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임 과장(34)은 지난달 하순 정부 부처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5월6일이 99% 확률로 공휴일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홍콩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확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피셜(지인과 오피셜을 더해 만든 인터넷 신조어로, 지인을 통한 비공식 확인을 뜻하는 말)’만 믿고 저질렀는데, 결국 지인의 말대로 됐다. “당시 6일이 공휴일로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연차를 사용해 해외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많아 홍콩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막판에 운 좋게 두 장을 구할 수 있었는데, 시간을 더 끌었으면 어려웠겠네요.”

직장인들에겐 아무리 여유로운 평일이라도 출근하지 않는 하루만 못하다. 공휴일 지정 여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서였을까. 지난달 28일 확정 발표가 나기 전인 오전부터 관련 안건이 담긴 정부 회의 자료가 카카오톡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빠르게 확산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황금연휴를 앞두고 젊은 샐러리맨들은 연휴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임시 공휴일 방침이 갑작스럽게 발표되는 바람에 업무에 차질을 빚게 된 직장인도 적지 않다. 회사 사정으로 당직 근무를 서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5~6일 이틀 중 하루도 쉬지 못하는 직장인도 많다.

부모님과 여행을 가거나, ‘방콕’ 하거나

한 제약회사 영업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최 주임(30)은 연휴 첫날인 5일부터 2박3일간 경기 가평에 있는 한 펜션에서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행비용은 모두 최 주임이 부담하기로 했다. 최 주임은 작년에 입사한 이후 험하기로 유명한 제약업체 영업 업무에 적응하느라 부모님을 잘 챙기지 못했다.

입사 동기 중엔 황금연휴 기간에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는 국내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데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들과 연휴를 보내게 돼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최 대리도 기대에 부풀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6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면서 ‘직장인들이 연휴 기간에 가족 단위로 국내 여행을 떠나면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여행을 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결국 집에서 빈둥거리기로 확정한 보험회사 강 대리(32)의 사례를 보면 당초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다.

강 대리가 처음부터 ‘방콕’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6일이 공휴일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강원, 제주 등 유명 여행지의 숙소를 수소문했지만, 이미 예약이 꽉 찬 뒤였다. 강 대리는 “정부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휴일 지정을 해선 샐러리맨들이 황금연휴를 제대로 보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다”며 “여행을 포기하고 집에서 쉬기로 결정한 나 같은 사람은 출근할 때 회사에서 지출하던 점심값도 쓰지 않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황금연휴는 무슨, 출근해야지…

한 식품 유통기업에 다니는 전 과장(34)은 6일이 공휴일로 지정되기 전인 지난달 초에 이미 이날 휴가를 가겠다고 신청했다. 5일부터 나흘간을 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일찌감치 마친 셈이다.

이후 6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자 전 과장은 이날 쓰기로 한 연차를 취소하고, 4일이나 9일에 연차를 신청키로 했다. 그런데 총무팀에 문의하니 “기존에 사용키로 한 연차를 취소할 수 없다”며 “연차를 추가로 써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미 결재가 난 안건을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공휴일에 쉬는데 연차를 쓰는 직장인이 어디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럴 때엔 중소기업의 운영 시스템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후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씁쓸해했다.

한 식품회사 홍보마케팅실의 막내인 김 대리(32)는 5~6일 이틀 연속으로 회사 당직을 서게 돼 울상이다. 원래 그는 5일 하루만 당직을 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6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휴일 당직이 한 명 더 필요해졌다. 순번대로라면 6일 당직은 김 대리의 선배인 다른 대리가 서야 했지만, “부모님 생신이라 저녁에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며 “당직을 바꿔달라”고 사정했다.

다음 순번인 과장도 “해외여행 티켓을 끊었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팀장이 나서 솔로이자 별다른 계획도 없던 김 대리가 하루를 더 서는 것으로 정리했다. “부서 막내라서 그러려니 합니다. 휴일 수당이나 잘 모아 다음 휴가를 알차게 보내면 되지요.”

갑작스런 공휴일에 ‘멘붕’

한 아파트 분양대행사에서 일하는 이 대리(32)는 지난주 예정에 없던 야근을 사흘 연달아 했다. 봄 아파트 분양 성수기가 시작되면서 모델하우스 개장을 준비하고 현지 공인중개업소를 방문해 홍보하는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느닷없이 공휴일이 생기면서 맡고 있던 아파트 청약 일정이 죄다 바뀌는 사태(?)가 벌어진 것.

통상 아파트를 분양할 땐 금요일에 모델하우스를 열고, 주말 이틀간 방문객을 끌어들인 뒤 그 다음주 화요일부터 청약접수를 시작한다. 그러나 황금연휴 기간에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아 모델하우스를 찾는 사람도 줄어들 게 뻔했다.

결국 이 대리가 다니는 분양대행사는 건설사와 협의한 끝에 예정돼 있던 모델하우스 개장을 1주일씩 미루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미 완성한 홍보 전단과 현수막을 수정하고, 언론사에 수정 보도자료를 돌리는 일이 이 대리에게 떨어졌다.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대리(32)는 갑작스런 공휴일 지정에 ‘멘붕(멘탈붕괴를 줄인 신조어)’ 직전까지 갔다. 그는 사내 태스크포스팀(TFT)에 소속돼 밤낮없이 일하느라 여자친구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6일이 공휴일이 되자 김 대리의 여자친구는 “3박4일 일정으로 여행을 가자”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번에도 못 가면 끝’이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TFT는 공휴일인 6일에도 쉴 계획이 없었다. 그는 선배들의 눈치를 뒤로하고, 묵혀둔 연차를 쓰기로 했다. “그래~ 잘 놀다 와”라며 선배들이 주는 눈치는 차라리 견딜 만했다. 뒤늦게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느라 국내외 곳곳을 뒤져도 숙소를 잡을 수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던 그는 여자친구를 설득한 끝에 5일 밤을 서울 한강이 보이는 고급 호텔에서 보내기로 했다. 엄청난 금전적 출혈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