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중심에 선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와 롯데마트·홈플러스가 최근 무성의한 대응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에는 무대응과 '꼬리 자르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 언론에 적극적인 보상 의지를 내비친 롯데마트는 민사소송 강제조정안에 이의신청서를 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홈플러스의 경우 3개 업체 가운데 가장 늦게 피해보상 계획을 밝혔음에도 계획이 부실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전날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보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상현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윤리 경영을 중심으로 하고 앞으로도 법과 윤리를 준수하겠다"며 "사과와 대응이 늦었다면 제 책임이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2004∼2011년 '가습기 청정제'라는 이름의 자체브랜드(PB) 제품을 판매했지만 옥시처럼 그간 공식 사과를 하거나 보상 계획을 밝힌 적은 없다.

이달 18일 롯데마트가 공식 사과를 하면서 취재진의 문의가 빗발치자 '사과와 보상 방침을 밝힐 예정'이라고 알린 것이 전부다.

김 대표가 참석한 전날 간담회 역시 사옥을 이전하면서 앞으로의 영업전략과 비전을 밝히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논란이 된 3사 가운데 가장 늦게 사과와 보상 계획을 밝혔음에도 재원 규모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상세히 밝히지 않아 검찰 수사와 다른 업체의 입장발표 속에 '등 떠밀린 사과'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마트 역시 비판에 직면한 것은 마찬가지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원인규명과 사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며 100억원의 피해보상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달 초 서울중앙지법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명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합의금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한 것과 관련해 롯데마트는 기자회견 나흘 뒤인 22일 이의신청서를 냈다.

강제조정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임의로 합의금을 정해 조정으로 갈음하는 절차다.

양측이 결정문을 송달받고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기고 이의를 제기하면 정식 재판이 진행된다.

법원이 정한 합의금은 수십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롯데마트는 "조정안에 대한 합의 기한까지 보상 기준을 수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우선 이의신청을 했다"며 "조정 금액이 많다거나, 피해 회복에 대한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보상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칙없이 '입막음식' 보상을 하는 것이 보상 약속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롯데마트의 설명이다.

롯데마트는 "약속한 대로 피해전담조직 구성과 보상 재원 마련을 철저히 준비해 검찰 수사 종결 후 보상 협의와 지급을 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롯데마트가 보상금 지급을 늦춰 협상력을 높임으로써 보상 액수를 줄이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옥시 역시 관계자의 검찰 소환을 코앞에 두고 사과문을 낸 것에 대해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옥시는 롯데마트의 공식 사과 이후 자사에 이목이 쏠리자 21일 입장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통감한다"며 "환경부·환경보전협회(KEPA)와 협의해 이미 조성한 50억원의 (피해자 지원)기금 외에 50억원을 추가로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옥시가 사건 발생 이후 5년 만에 처음 언론을 통해 공식 사과했다는 점, 이 사과마저도 홍보대행사를 통해 이메일로 언론에 배포한 뒤 연락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결국 누리꾼들은 옥시가 수입·판매하는 제품 이름을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블로그·게시판에서 퍼나르면서 불매운동에 동참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과 환경보건시민센터, 소비자단체협의회 등 37개 단체도 옥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최근 살균·표백제 수요 자체가 줄고 있어 이번 사태로 옥시의 대표 제품인 옥시크린 등의 매출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소셜커머스를 중심으로는 옥시 제품의 매출 부진이 눈에 띈다.

소셜커머스 관계자는 "이달 18∼24일 옥시크린 매출이 전 주보다 20%가량 줄었다"며 "타사 살균·표백제도 매출이 줄고 있기는 하지만 손 세정제(데톨)와 제모제(비트) 등 옥시 브랜드 매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