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 신산업 육성에 나선 대구시는 정수장과 하수처리장뿐만 아니라 신천 등을 기업의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계획이다. 대구시  제공
대구의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 신산업 육성에 나선 대구시는 정수장과 하수처리장뿐만 아니라 신천 등을 기업의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계획이다. 대구시 제공
SK텔레콤과 삼성, 대구시의 사물인터넷(IoT) 협약식이 열린 지난달 28일, 김선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50년 전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었다. 김 센터장은 “글로벌 금융화가 시작될 때 싱가포르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싱가포르를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로 다 내놓겠다고 선언했다”며 “금융과 관련한 모든 규제를 풀어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하고 어떤 인재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뒤 50년이 지난 지금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금융중심지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가 물, 의료산업, 전기차 기반의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신산업에 대구를 테스트베드로 내놓는 혁신적인 실험에 나섰다. 이 실험에는 기업과 병원, 대구시 지방공기업, 산하기관이 참여해 실적을 내고 있다.

홍석준 대구시 미래산업본부장은 “전기차, 에너지신산업, 의료산업 등을 대구의 미래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철저히 준비했다”며 “대구의 주력 업종인 기계부품산업은 로봇산업과 지능형 자동차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강소기업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세계 경제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앞서서 미래 신산업으로의 구조 개편에 나선 것이다.

대구의 이런 노력은 민선 6기에 와서 구체화되고 속도를 내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취임 이후 1년간은 지역사회에 팽배한 냉소주의 극복에 집중했다. ‘대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분위기를 시민사회와 함께 조성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도시 전체를 바꾸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스마트도시 건설이라는 비전 아래 신산업을 육성해 기업의 체질 개선과 발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테스트베드 전략을 통한 신산업 육성이 대구를 경쟁력 있는 미래도시로 바꿔놓을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대구 테스트베드 도시로 부상…퍼스트 무버 경제의 핵심

대구가 2030 비전과 신산업 육성에 테스트베드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세계 경제 변화와 관계가 깊다.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혁명에 나서면서 실험실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시설, 지역 나아가 도시 전체를 신산업 육성을 위한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의 삶 자체가 실험 대상, 테스트베드가 되기도 한다. 산업·경제적 의미의 테스트베드가 사회부문에 적용될 때 ‘리빙랩(Living Lab)’ 개념에 접근한다. 테스트베드와 리빙랩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정보가 상품이 되는 시대가 왔다.

장재호 대구경북연구원 본부장은 “일본에서는 IoT를 적용한 집을 지어 소비자가 살면서 생산하는 데이터를 수년간 모아 새로운 건설주택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며 “데이터에 기반한 주택건설사업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테스트베드와 리빙랩은 미래 신산업, 신경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스마트시대 제조업 분야만이 아니라 주택건설업 금융업을 포함한 서비스업 분야가 테스트베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장 본부장은 “우리 경제가 이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first mover·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 테스트베드가 부상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추종할 때는 해외 기업이 요구하는 제품을 잘 만들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앞서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신기술을 인증·검증받아 해외에 진출해야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테스트베드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절망의 도시를 희망의 도시로 바꾸는 테스트베드 전략

기업가 정신이 갈수록 사라지는 시점에서 지방자치단체 대구, (주)대구가 기업가 정신으로 부활하고 있다. 한때 주력산업이 구조조정 기회를 상실하고 ‘잃어버린 10년’으로 절망의 도시라는 비아냥까지 받아야 했던 대구가 변화하고 있다. 2005년 60%대에 이르던 채무비율을 2015년 20%대로 낮추면서도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했다. 2014년 민선 6기, 정치인 출신 시장이 취임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거세졌다. 2년 전 대구시민들은 관료 출신이 아니라 정치인 시장을 선택했고 이번 총선에서는 31년 만에 정통 야당에도 자리를 허락했다. 대구는 정치·경제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구 경제는 아직 어렵지만 변화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의 기업가 정신이 테스트베드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방의 노력과 변화를 그 어느 매체보다 빨리 간파하고 전달하면서 대구를 응원하기 위해 29일 대구에서 ‘한경데이’ 대구 혁신도시 전략콘퍼런스를 연다. 테스트베드 전략을 통한 신산업 육성과 지역 및 국가 발전을 모색하는 대규모 콘퍼런스를 중앙지 최초로 시도한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