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도박 혐의'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징역 8년 구형
“인천제강소의 파철(자투리 철) 판매대금 88억5000여만원을 어디에 썼습니까.”(김용식 검사)

“대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공장 현장직원 격려비 등 비공식적인 현금성 지출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이백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20일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63·사진)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3호 법정. 선고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이날 결심공판에서도 검찰과 장 회장 측 변호인단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양측은 횡령,재산은닉,해외원정 도박 등 주요혐의마다 격하게 부딪쳤다.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은 해외원정 상습도박에 대해 검찰 측은 강경한 목소리로 유죄 취지를 밝혔다. 1심에선 도박을 상습적으로 했다는 ‘상습성’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검사는 “카지노 VVIP 고객으로 한 판당 2000만원까지 베팅해 카지노 내부감시망에 오르고 카지노로부터 전용 제트기까지 제공받았는데 어떻게 상습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장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호텔에서 2001년부터 10년 동안 1억달러를 걸어두고 도박을 했다. 연예인들은 단 하루 도박해도 처벌 받는데 이렇게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것을 두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공격했다.

피고 측 변호인단은 도박 문제가 전면에 나오는 것 자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변호인은 “왜 언론에서도 도박 문제에만 유독 그렇게 집중하는지 모르겠다”며 “피고인이 정식 카지노가 아닌 불법 도박장에 가서 한 것도 아니고 해외 출장 중 잠시 시간을 내 들른 것뿐인데 무슨 상습 도박이냐”고 반문했다. 변호인은 또 “검찰은 10년 동안 한 금액을 다 모아서 상습도박이라 하는데 평균을 내보면 1년에 1회 꼴”이라며 “일반인들도 해외 여행가서 카지노 하는 것이고 제트기 등은 디파짓(카지노에 맡겨두는 보증금) 금액에 따라서 호텔서 제공한 서비스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장 회장의 장남인 장선익 동국제강 과장이 해외 지사에 있으면서 일도 안하고 급여를 불법으로 받았다는 ‘가공급여’ 혐의에 대해서도 양측은 1심에 이어 공방을 이어갔다. 1심 재판부는 “회사에 직원으로 등록하는 절차가 다르고 상당 기간 국내에 체류한 정황이 발견됐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날도 같은 취지로 장 과장의 급여 문제를 지적했다.

피고 측은 반발했다. 변호인은 “장 과장은 2007년 입사해 국내서 4년 동안 근무하고 해외 연수를 준비해 주재원으로 발령 받은 것 뿐”이라며 “해외 연수 준비과정을 거쳐 마친 것뿐인데 월급 준 게 무슨 죄인가”고 받아쳤다. 또 “해외 연수를 하는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건 동국 제강 직원들에게도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청맥철강과 관련된 배임수재 혐의에 대해서도 피고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장 회장이 철강 대리점인 청맥철강의 대표로부터 유통점 등록의 대가로 5억여원 상당의 골프회원권을 받은 혐의다. 변호인은 “피고인과 청맥철강 대표는 50년 지기 친구로 1주일에 서너 번씩 만나는 사이”라며 “유통점 등록이 된 이후 두 달여 동안 서른 번도 넘게 만나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회원권을 사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였다.

양측은 사건에 대한 표현을 두고도 대립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 총수 개인 비리라며 피고가 누구인지에 따라 형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회장의 변호인단은 역대 최대 수준이란 표현은 과하다고 반박했다.

장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과오와 부덕함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사죄했다. 그는 제 불찰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다며 회사와 산업현장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해외 투자 등을 통한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검찰은 장 회장에게 징역 8년과 추징금 5억608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원심이 선고한 3년6개월 징역형은 대법원 양형 기준에 명백히 반한다며 무거운 형이 불가피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피고가 누구인지에 따라 형이 달라진다면 정의가 아니다”며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3년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5억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은 배임수재·횡령·재산 은닉 등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항소심 선고는 다음달 18일 오후 3시에 한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