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관 대표가 점자단말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노영관 대표가 점자단말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초등학교 6학년 때 망막박리를 앓아 시각장애 1급이 됐다. 맹학교에 다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장래 희망을 안마사나 침사, 특수학교 교사가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썼다가 담임교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선생님을 놀리는 나쁜 학생”이라고 꾸중을 듣고 따귀를 맞았다. 대구대에서 금융을 전공하고, 성균관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평소 관심이 많던 시각장애인용 정보기술(IT) 보조기기업계의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독립해 창업했다. 노영관 네오엑세스 대표(40)의 이야기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노영관 대표와 만났다. 사장실 문에는 점자 창안자 루이 브라유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대표실에서 세 살짜리 골든리트리버 안내견 ‘등대’가 나와 꼬리를 치며 반겼다. 노 대표는 “아직 매출이 10억원 정도밖에 안 되고, 영업이익도 내지 못하는 작은 회사일 뿐이지만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기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나만의 전문 분야이기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네오엑세스는 2011년 노 대표가 성균관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세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다. 점자단말기와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 인쇄물 음성변환 출력기 등 시각장애인의 IT 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조기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임직원은 16명, 그중 노 대표를 포함해 3명이 시각장애인이다. 노 대표는 “1990년대 초반 중학생 때 친구가 미국에서 사온 점자입력기를 처음 접했고, 그때부터 IT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며 “당시만 하더라도 점자입력기가 국내에 도입되지 않아 매우 생소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체 개발한 점자단말기를 갖고 지난 3월21~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장애인 IT산업 박람회 ‘국제 장애인 정보통신 접근성 및 보조기기 콘퍼런스(CSUN)’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중국 프랑스 등 10개국 업체로부터 공급계약 제안을 받았고, 구글 접근성팀과 접촉했다. 지난 18일엔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네오엑세스 본사를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했다.

노 대표는 “구글 접근성팀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기에 아직 그리 내세울 건 없다”며 “우리 제품에 대한 호응이 좋아 정말 기뻤지만 아직 생산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장애인의 IT기기 사용을 도와주는 AT(accessibility technology: 접근성 기술) 분야의 선두주자입니다. 선진국에선 이미 이 분야에 대한 개발과 마케팅이 활발합니다. 구글은 언뜻 보면 황당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아도 결코 돈이 되지 않을 일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에 대응할 만한 기술이 있는지, 어떤 형태로 사업화할지 등 세 가지를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아울러 “장애에 대한 인식과 구별 기준이 날로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그에 상응하는 AT 기기를 더 많이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예전엔 난독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ADHD), 저시력증 등을 장애로 분류하지 않았어요. 그냥 ‘이상한 애’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 여겼죠. 그렇지만 지금은 각종 치료 방법과 보조기기가 나오고 있잖아요. AT업계는 앞으로 더욱 정교하게 세분화될 것입니다. 혁신을 위해선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