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뒤늦게 토익 문제삼는 인사처
“공무원 시험에 토익을 도입하기로 한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일 뿐, 토익을 배제할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가 지난 17일 내놓은 ‘헷갈리는 해명’이다. 공무원 시험에서 토익 도입을 재검토한다는 보도가 나간 뒤였다.

인사처는 최근 YBM시사 한국토익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장애인 편의지원 운영 현황과 개선 계획을 요구했다.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인사처의 공무원 시험 성적을 조작했다가 붙잡힌 송모씨가 토익에서도 부정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난 데 따른 조치였다. 송씨는 허위로 약시 진단서를 발급받아 토익에서 일반인들에 비해 시간을 더 많이 배정받았다.

인사처 고위 관계자는 “시험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토익 점수를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공무원 시험에서 토익을 배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익에서 부정 행위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전문 브로커를 통한 대리 시험과 스마트 기기를 동원한 조직적인 부정 행위 등의 사례가 경찰 수사를 통해 알려졌다. 그런데도 인사처는 내년부터 7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의 기존 영어과목을 토익 등 공인영어시험으로 대체한다고 지난해 초 발표했다. 당시엔 문제 삼지 않다가 ‘공시생 사건’이 터진 뒤에야 뒤늦게 토익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험을 불과 1년 남기고 당초 계획을 바꿔 토익을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안팎의 지적이다. 정부 발표를 믿고 시험을 준비해 온 공시생들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어서다. 인사처도 당초 계획대로 내년부터 7급 공무원 시험에 토익을 도입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적어도 2~3년 시행해 본 뒤 토익 배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내부 방침이다.

인사처가 ‘토익 배제 검토’를 거론하는 것은 위기 모면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공시생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자 토익으로 화살을 돌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인사처는 토익에 대한 검증에 나설 게 아니라 공무원 시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