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입원 권유받고 가출…현장검증서 "나를 보호하려는 행동" 주장

흉기를 들고 대학 캠퍼스와 등산로를 활보하며 등산객을 살해한 김모(49)씨의 현장검증 결과 범행 당시 심한 과대망상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19일 광주 어등산 중턱에서 이뤄진 현장검증 내내 "가족이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 했다. (살인은) 생명의 위험을 느껴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며 특별히 죄책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날 오전 범행 현장인 팔각정 쉼터까지 15분여간 산에 오르며 등산객 수십여명이 포승줄이 묶인 채 마스크를 쓴 김씨를 알아보고 수군거리거나 비난했지만 김씨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범행 현장인 정자에 도착하자 "피해자 이모(63)씨가 이곳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어 경찰에 신고하는 줄 알고 전화기를 내놓으라고 했다"며 "위험했다. (피해자가) 칼 든 사람에게 저항할 때는 다르지 않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을 항변하기 시작했다.

흉기를 휘두른 지점인 약수터 방향 오솔길로 5m가량 내려가서도 "피해자가 흉기를 빼앗으려 했다. 살기 위해 피해자의 손을 물어뜯었다"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의 저항 때문에 위험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씨를 살해한 뒤 휴대전화를 빼앗아 통화목록을 확인하려 했으나 잠금 설정 때문에 보지 못했고 '062-112' 등으로 전화를 걸어보고는 신호가 울리자 재빨리 전화를 끊고 발로 밟아 부쉈다.

경찰 통제선(폴리스라인) 너머로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등산객들은 김씨의 발언에 "뻔뻔하다. 정말 나쁜 사람이네"라고 비난하거나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다 같이 등산지팡이라도 써서 제압했더라면…."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범행 후 도주 과정에서 다른 등산객에게 또다시 살해 위협을 한 데 대해서도 "등산객 전체를 믿을 수 없었다.

날 죽일 것 같았다"고 말해 조기 검거가 되지 않았다면 추가 범행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씨는 범행 이틀전인 16일 오전 가족과 한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입원 권유를 받자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비닐하우스에서 흉기를 주워 어등산 인근 대학 교내를 돌아다녔고 옷도 학교에서 주운 예비군복으로 갈아입었다고 진술했다.

다음날인 17일에는 왼손에 흰 속옷을 감아 흉기를 안 보이게 감춘 채 아침 일찍부터 어등산을 배회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18일 김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등산객들을 보고 흉기를 든 자신을 신고해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가게 하려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전문기관에 김씨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areu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