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처 침입 공시생, 지방 대학에 유학 와 공무원에 올인
취업 준비생 "오죽했으면…상상 속에선 그보다 더한 일도"

"공부도 잘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는데…."

전남의 한 농촌 지역에서 제주에 유학 와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공무원 시험 수험생이 서울시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 침입해 시험성적을 조작한 사건이 알려지자 해당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은 당혹감과 함께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씁쓸한 심정을 내보였다.

범행을 저지른 송모(26)씨는 2016년 국가공무원 지역인재 7급 필기시험에 응시, 지난달 26일 오후 9시 5분께 정부 서울청사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몰래 침입해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필기시험을 치른 뒤 자신의 성적이 합격선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저지른 범행이었다.

필기시험 전에는 문제지를 훔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국가직 지역인재 7급 시험은 상위 10% 이내의 학과성적과 영어·한국사 등 일정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이 대학별 추천심사위원회의 선발과정을 통한 추천을 받아야만 응시할 수 있다.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송씨는 '지역인재'였다.

그러나 취업의 압박감과 절박감은 지방 대학에 유학 와 홀로 남겨진 취업준비생을 범죄로까지 몰고 갔다.

송씨는 대학 동기생보다 한 살이 많았다.

인문대생인 그는 학과 특성상 취업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고 싶은 욕망이 매우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복학 후 공무원 지역인재 과정에 선발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는 등 의지를 다졌고, 올 학기초에는 사실상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공무원 시험에 올인했다.

2∼3주 전쯤 우연히 송씨를 만난 대학 동기 이모(25)씨는 "최근 근황을 묻자 시험을 봤는데 합격점보다 낮아서 걱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며 속상해했다"고 전했다.

이씨 외에는 송씨의 최근 근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송씨의 또 다른 대학동기 A(25)씨는 "학창시절 사고를 치거나 비뚤어진 성격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선후배 관계도 크게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의 범행을 듣고 당황해 했다.

A씨는 "1학년까지는 친하게 지냈지만 이후 친구가 휴학하면서 연락이 끊겼다"며 군대가 아닌 다른 문제로 휴학했는데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재학 중인 송씨의 학과 학생들도 송씨에 대해 잘 아는 학생이 없었다.

학생들은 "수업에 매우 착실히 참여하는 등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학과 생활을 잘 하지 않았다"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한 학생은 없었다고 기억했다.

동기들마저 대학을 대부분 졸업하고, 홀로 남은 캠퍼스에서 취업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 대부분 강의실과 도서관,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교수들도 "공부도 잘하고 착실한 학생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자세한 언급을 꺼렸다.

송씨의 범행을 접한 한 다른 취업준비생은 "우리 학교 학생이 벌인 일이라 너무 놀랍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대학 도서관에 가서 보면 학생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에 목숨을 건다.

아마도 마음(상상) 속으로는 그 학생이 벌인 짓보다도 더한 생각들을 하루에 몇 번이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다음 이용자 꺼***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부는 뭣 좀 깨달았으려나? 젊은이들이 저렇게까지 않아도 공무원 못지않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게…', 아이디 ze***는 '씁쓸하다.

7급 공무원이 되려고 죄를 지어야 하는 세상이…'라는 글을 올렸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b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