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꾸린 재혼가정 지키려고 '아동 학대' 눈감고 모른 척
전문가 "예방과 조기발견이 핵심…이웃이 감시해야"


전국적으로 계모와 계부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며 끊이지 않고 있다.

'락스 학대' 등으로 숨진 신원영군과 '현대판 콩쥐'로 비유되는 의붓딸 학대까지 대부분 계부모가 저지른 범행이다.

아동 학대 주요 범인으로 계부모가 꼽히고 있으나 이는 편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아동학대의 10건 중 8건은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는 통계 수치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애써 꾸린 재혼 가정을 지키려는 몸부림과 이질감에서 오는 구성원 간의 갈등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으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예방 교육'과 '조기발견'을 꼽고 있다.

◇ 전국에서 계모·계부 아동학대 잇따라

최근 강원 춘천에서는 집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를 지켜보면서 의붓딸에게 온갖 집안일을 시킨 40대 계모가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대판 콩쥐'에 비유되는 계모의 의붓딸 학대는 누리꾼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의붓딸만 집에 둔 채 떠난 가족여행에서도 계모는 CCTV로 감시했다.

밥 짓기와 청소, 빨래 등 온갖 집안일은 의붓딸의 몫이었다.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계모는 끼니도 굶겼다.

반면 자신이 낳은 친딸과 친아들은 '금지옥엽'처럼 여겼다.

지난 2월 부천에서는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11개월간 미라 상태로 내버려둔 40대 목사와 계모가 경찰에게 붙잡혔다.

아버지인 목사 A(47)씨와 계모 B(40)씨는 지난해 3월 17일 오전 5시 30분께부터 낮 12시 30분까지 7시간 동안 부천시 소사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막내딸 C양(당시 13세)을 때려 숨지게 했다.

C양의 시신은 11개월 가까이 방에 버려뒀다.

부부는 나무막대가 부러질 정도로 C양을 폭행했다.

A씨 부부는 딸의 시신을 장기간 집 안에 방치한 이유에 대해 "기도만 하면 딸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한 달 뒤 평택에서는 7살 신원영군이 계모의 학대를 받다 끝내 숨졌다.

계모 김모(38) 씨와 친부 신모(38) 씨는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원영이가 소변을 잘 못 가린다는 이유 등으로 수시로 폭행하고, 베란다에 가둔 채 식사를 하게 하는 등 학대했다.

무려 3개월간 욕실에 감금된 채 수시로 폭행당한 원영이는 마지막 20시간 동안 알몸으로 찬물 세례를 받다가 결국 숨졌다.

신 씨 부부는 신 군의 시신을 열흘간 베란다에 방치하다 야산의 차가운 땅속에 묻었다.

두 사람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처벌을 피하고자 거짓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청주에서는 네 살배기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암매장한 비정한 친모와 계부의 범죄 행각이 5년 만에 들통났다.

계부 안모(38) 씨와 친모 한모(36·사망) 씨는 2011년 12월 중순께 당시 4살 난 딸이 숨지자 충북 진천의 한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했다.

한씨가 결혼 전 존재를 숨기고 보육원에 맡겼던 안양이 2011년 4월께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집으로 온 후 가정불화가 이어졌다.

한 씨는 안양이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수차례 집어넣는 등 학대하다가 숨지게 했다.

한 씨는 취학 대상인데도 입학하지 않은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왜 유독 계부·계모인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2014년 기준)'를 살펴보면 전체 학대 피해 아동 1만27명의 가정유형으로는 친부모 가정이 44.5%로 가장 많았다.

한 부모 가정이 32.9%(부자가정 18.8%·모자가정 14.1%)로 두 번째로 많았다.

재혼가정은 7.5%에 그쳤다.

그 때문에 학대 가해자도 친부모인 경우가 77.2%(친부 45.2%·친모 32%)에 달한다.

그러나 계모와 계부는 각 2.4%, 1.9%였다.

재혼가정 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해도 오히려 친부모에게 학대받는 아동이 많은 게 현실이다.

다만, 재혼가정과 계모와 계부에 의한 학대 비율은 미세하나마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 학대가정 중 재혼가정 비율 6.7%, 가해자 중 계모와 계부 비율 각 1.9%와 1.3%이던 것이 4년 만에 모두 0.6∼0.8% 포인트 증가했다.

문제는 터부시 돼온 이혼·재혼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재혼가정에서 빚어지는 이질적인 갈등이 아동학대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판 콩쥐' 사건의 계모도 애써 이룬 자신의 재혼 가정에 한동안 친할머니가 양육하던 의붓딸이 다시 나타나자 더는 가정이 화목하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학대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 정부 근절 대책 마련…부모교육·관계기관 협력 필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정부를 비롯한 각 기관·단체에서도 종합대책을 마련하며 근절에 나섰다.

정부는 아동의 나이와 특성별로 위기 아동을 사전에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서던 기존의 아동학대 정책을 전환키로 한 것이다.

'예방'과 '조기발견'이 이번 대책의 핵심인 셈이다.

우선 부모와 아동 모두에게 생애 주기별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전북도는 '이웃이 아동학대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도와 도의회, 도교육청, 전북경찰청, 법조계, 의료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아동학대예방위원회'와 '아동학대 실무협의회'를 구성한다.

핵심은 모든 이웃이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감시자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 신고 활성화 및 학대피해 아동 조기 발견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부산지법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법원이 가해자 접근금지명령을 내리고 피해 아동을 임시보호하는 등 초기에 개입해 2차 피해를 막기로 했다.

우선 중대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피해 아동 임시보호명령과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다.

가해자가 접근금지 의무를 어기면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가둔다.

긴급한 때에는 소환조사 대신 현장조사를 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아동을 이해할 수 있는 부모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 계부모의 학대가 생각보다 잔인하고 아동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재혼하는 경우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학대를 눈감고 모른척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혼 가정에 대한 특별관리·교육이 더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며 "부모교육에 참여시킬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서소정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도 "재혼가정과 혈연가정을 떠나 아이를 보는 아동관이 달라져야 한다"며 "생애주기별 부모 교육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재혼가정은 아이를 이해하려는 시간과 노력이 친부모보다 더 필요하고,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며 "관계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 전문가 적재적소 배치 등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영주·홍인철·오수희·박영서·이재현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