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 빨개지고 손이 덜덜덜…혹시 사회공포증?
30대 직장인 박윤구 씨는 사내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발표 2주일 전부터 머릿속으로 발표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연습했지만 혹시 실수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긴 연습시간 덕분에 프레젠테이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이어졌다. 발표하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는지, 말을 더듬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뒤에서 비웃지 않았는지 하는 고민만 계속됐다. 또다시 프레젠테이션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었다. 박씨는 남들 앞에 서야 할 일이 적은 부서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회사에 입사하는 등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은 시기다. 변화가 많은 때 자신에게 새로운 질환이 있다고 깨닫는 사람도 많다. ‘사회공포증’ 환자들이다. 남들 앞에 서서 발표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워 학교나 회사에 가는 것조차 꺼리게 되고 지하철 버스 등에서 다른 사람 시선이 의식돼 외출을 피하는 행동이 반복되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중·고등학생은 다른 사람 앞에서 책을 읽을 때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는 게 싫어 결석하는 형태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성격 때문이라고 여기고 치료하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공포증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알아봤다.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 빨개지고 손이 덜덜덜…혹시 사회공포증?
사회공포증 환자, 10명 중 1명 자살 시도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 앞에서 당황하거나 실수하는 등의 불안을 경험한 뒤 같은 상황을 피하고 이 때문에 사회 활동에도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다. 사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창피를 당하거나 자신이 난처해지는 것에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때, 공중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이성에게 만남을 신청할 때 심한 불안을 경험한다. 사회공포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받는 사람은 한 해 1만~2만명 정도지만 실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2~3%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병원을 찾을 정도로 증상이 심한 환자 가운데 4분의 3 정도는 휴학이나 휴직을 고려하고 있고, 3분의 1 정도는 실제 휴학 또는 휴직한 것으로 보고된다. 3분의 1 정도는 우울증과 알코올 남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체 환자 중 10%는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고, 5%는 사회생활을 전혀 못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하다.

조성진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공포증은 신체적 질환 못지않게 노동력 상실과 삶의 행복을 파괴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많은 환자가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고통을 참는다”고 설명했다.

사회공포증 환자의 증상은 두려움으로 시작한다.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타인과 시선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등의 증상이다. 환자들은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해 숨기려 하지만 긴장이 더욱 커져 공황발작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긴장돼 손이 떨리는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 못한다. 긴장 상태에서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돼 잠을 잘 때만 편안하다고 느끼게 된다.

환자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환자는 긴장, 손 떨림, 목소리 떨림, 삼킴장애 등을 호소한다.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환자는 누군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공포감을 느낀다.

지나친 공포감 느끼면 의심해봐야

미국 정신의학회는 몇 가지 기준에 맞으면 사회공포증으로 진단한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놓이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사받아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큰 공포를 느끼고 창피를 당하거나 난처해질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대표적 증상이다. 이 같은 상황에 노출되면 예외 없이 불안 반응을 일으키고 공황발작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스로 공포증이 과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제어하지 못한다. 두려워하는 상황을 피하거나 심한 고통을 견디고 참아낸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다. 18세 미만이면 적어도 6개월 이상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이 같은 증상은 다른 불안장애나 질환과 상관없이 나타난다. 여기에 모두 해당하면 사회공포증이다. 전문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회공포증은 내향적인 사람에게 많이 생긴다. 정신적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하는 외향적인 사람과 달리 내향적인 사람은 정신적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기 때문이다. 사회공포증으로 진단되면 환자가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격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된다. 내향적인 사람은 적은 수의 친구를 깊이 사귀고 세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이나 영화를 선택할 때 남들의 평가보다 스스로의 느낌을 중요시한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 앞에서 더 많은 수줍음을 타고 당황하고 긴장한다.

환경적 영향 때문에 사회공포증이 생기는 환자도 있다. 부모가 지나치게 비판적이거나 사랑이 부족하면 대인 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상대방 눈치를 살피며 잘못한 것은 없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경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회공포증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기 때문에 원인에 맞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 증상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안 극복 훈련이나 약물로 치료

치료를 위해서는 예기불안을 극복하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예기불안은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미리 불안해하는 것을 말한다. 적당한 예기불안은 갑자기 닥친 상황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사회공포증 환자의 예기불안은 그 정도가 심하다. 대부분 앞으로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자신이 느끼는 예기불안을 이해하고 강도를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내향적 성격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사회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내향적인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기 쉽다.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하며 이루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인지 훈련과 함께 약물치료를 하기도 한다.

조 교수는 “자신의 단점에 당당히 맞서고 자존심을 지키도록 하는 인지 교정 훈련 등을 통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며 “걱정 많은 성격, 내향적 성격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움말=조성진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나경세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