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번엔 뒷돈 주고 부실BW 넘겨…'기업사냥꾼'에 저축은행도 당했다
디지텍시스템스를 인수해 1000억원대 불법 은행 대출 로비를 벌인 기업사냥꾼 최모씨가 부실기업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축은행에 넘기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해준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대기업 계열 저축은행까지 최씨의 손에 놀아난 것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박길배)는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체 엔피텍이 발행한 BW를 한화저축은행이 인수하도록 알선하고 5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금융브로커 김모씨(33)를 최근 구속했다.

김씨는 2013년 11월 디지텍시스템스 최대주주이던 엔피텍 측으로부터 BW 100억원어치를 인수할 저축은행을 찾아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다. 당시 기업사냥꾼 최씨가 실소유주이던 엔피텍은 자금난으로 1차 부도를 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BW를 인수할 금융회사를 찾을 수 없었다.

최씨는 같은 해 4월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통해 엔피텍 소유주가 됐다. 2012년 2월 코스닥 상장사이던 디지텍시스템스를 인수한 지 1년2개월 만이다. 2010년대 초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국내 생산 1위이던 디지텍시스템스와 마찬가지로 엔피텍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2위인 우량 기업이었다. 하지만 최씨가 디지텍시스템스 최대주주를 비상장사이던 엔피텍으로 교체하고 회삿돈을 빼돌리기 시작하면서 두 회사의 재무구조는 급격히 나빠져 도산했다. 2014년 서울중앙지검 수사에서 최씨가 두 회사에서 빼돌린 것으로 확인된 돈만 537억여원에 달했다.

뒤늦게 엔피텍의 부도 사실을 확인한 한화저축은행은 해당 BW 100억원어치를 2014년 손실 처리했다. 한화저축은행은 2008년 한화그룹이 부실 저축은행이던 새누리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해 설립했다.

오형주/정소람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