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고용세습'에 눈감은 국회
“금(金)수저, 은(銀)수저는 바라지도 않는다. 노조원 아버지라도 있으면 좋겠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8일 2769개 기업의 노사 단체협약을 조사해 내놓은 결과에 대한 네티즌 반응이다. 조사의 핵심 내용은 국내 기업 네 곳 중 한 곳꼴로 ‘정년퇴직·장기근속자 등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고용 세습’ 조항이 있다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은 대기업일수록 고용 세습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이 많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있는 사업장일수록 ‘일자리 대물림’이 많다는 사실에 울분을 터뜨렸다. 정부의 노동개혁을 ‘노동개악’이라며 “청년 일자리 해법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던 민주노총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1년여 전의 일이다. 이른바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지난해 한국경제신문이 처음 보도한 이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본지 2015년 2월12일자 A1, 3면 참조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비판했고, 노조에 못 이기는 척 도장을 찍어준 기업들도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여론이 들끓자 정치권도 움직였다.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 등 10명이 지난해 3월 일자리 대물림을 금지하는 내용의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7월에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외 아홉 명이 ‘채용 등 사용자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사항은 단체협약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런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면 “단체협약에는 문제가 없는데 정부가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궤변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란 기대는 과욕이었을까. 개정안 발의, 딱 거기까지였다. 개정안 발의 이후 해당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형, 주조 등 뿌리산업 인력난 해결을 위한 파견법 개정안을 놓고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던 야당이다. “야당에 좋은 일은 못한다”며 노동개혁 3법(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상법)마저 외면한 여당이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로 치솟은 상황에서 청년 구직자들이 언제까지 ‘고용 세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뉴스를 들어야 할지 답답하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