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변호사회의 한스페터 벤켄도르프 부회장(왼쪽)과 탄야 볼프 사무총장이 독일의 법률시장 개방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병훈 기자
프랑크푸르트변호사회의 한스페터 벤켄도르프 부회장(왼쪽)과 탄야 볼프 사무총장이 독일의 법률시장 개방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병훈 기자
유럽 경제의 중심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걷다보면 외국 로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앙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500m 정도 가면 DLA파이퍼가 았고 정면으로 약 1㎞ 가면 베이커&매킨지가 나온다. 북동쪽의 한적한 오피스 지역에는 중국계 싱가포르계 등 아시아 로펌도 있다. 이들은 기업 법률자문을 맡으며 프랑크푸르트가 유럽 경제의 동맥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 주목할만한 건 간판은 외국 로펌이지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 독일 변호사라는 점이다.

[Law&Biz] "법률시장 개방한 독일, 젊은 변호사 활동무대 넓어졌다"
마인강변에 있는 DLA파이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일하는 변호사 약 70명은 모두 독일 변호사다. 미하엘 마고치 독일 변호사는 이 사무소의 매니징 파트너(로펌의 임원 격)로 일하고 있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뮌헨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를 졸업했으며 유학생활 등으로 미국에 3년 머문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독일에서 살았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변호사로 일하며 법률시장 개방이 독일 변호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몸소 체험했다.

마고치 변호사는 1986년 미국에서 돌아온 뒤 뮌헨의 한 로펌에 들어갔다. 이 로펌은 뮌헨에서 가장 컸지만 변호사 수는 20명이 안 됐다. 당시 독일 변호사는 대부분 개인사무소에서 일했고 로펌도 변호사 10명이 넘으면 큰 축에 속했다. 그러나 1989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서로 다른 지역의 로펌 합병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고 1990년대 들어 외국 로펌에 시장이 열리며 상황이 바뀌었다.

로펌이 대형화·글로벌화되며 메고치 변호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1991년 미국계 로펌 셔먼&스털링이 프랑크푸르트 사무소를 열며 그를 고용했다. 마고치 변호사는 2년 뒤 독일계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 로펌은 곧 미국계 쿠더트브러더스에 합병됐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독일 시장으로 들어오며 미국계 대형 로펌도 따라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는 2005년 DLA파이퍼가 프랑크푸르트사무소를 열 때 이곳으로 와 지금껏 일하고 있다.

마고치 변호사는 “활동무대가 이전보다 넓어졌고 글로벌 로펌의 일원으로서 영향력도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는 ‘독일 법조계가 법률시장 개방으로 큰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마고치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들이 법률시장 개방으로 더 많은 기회와 더 나은 보수를 얻게 됐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오늘날 대다수 독일 변호사가 이런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고치 변호사의 말이 사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변호사회를 찾았다. 한스페터 벤켄도르프 프랑크푸르트변호사회 부회장은 1980년 변호사가 됐으며 올해로 10년째 변호사회 집행부를 맡아 법률시장 사정에 밝다. 도이치은행 사내변호사로 약 30년 일했고 지금은 개인사무소를 운영하는 등 대형 로펌 출신과는 배경이 사뭇 다르다. 그런 벤켄도르프 부회장도 독일 법률시장 개방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벤켄도르프 부회장은 “법률시장 개방으로 파이가 커지며 독일 변호사의 일거리가 늘었다”며 “외국 로펌이 늘어난 독일법 자문을 독일 변호사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률시장이 개방돼도 해당 국가의 법 자문은 그 나라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는 “글로벌 로펌으로 이직하는 독일 변호사가 많아졌는데 이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경제적 이익과 많은 의뢰인을 확보했다”며 “국제적 규모의 거래에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로펌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해 온 시니어 파트너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국제 법률시장의 강자인 영미계 로펌은 주로 현지 로펌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독일에 진출했다. 벤켄도르프 부회장은 “영미계 로펌은 소수가 독점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시스템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합병 뒤 이들 중 일부는 권한을 잃었다”며 “로펌 대 로펌으로 봤을 때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외국 본사가 가져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자리를 함께 한 탄야 볼프 프랑크푸르트변호사회 사무총장은 그러나 긍정적 영향이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볼프 사무총장은 “개인사무소를 운영하던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부정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며 “전체적으로 수익과 업무량이 늘었고 특히 젊은 변호사들은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권한이 큰 시니어 파트너변호사들은 어차피 연차가 많아 은퇴를 준비하는 과도기적인 상황이었다”며 “개방 뒤 실패한 사람은 없어보인다. 거의 승자만 있었다”고 강조했다.

법률시장 개방 과정에서 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까지 독일 법률시장은 규제가 매우 강하고 보수적인 분위기가 컸다. 시장 개방으로 인해 독일법 윤리나 전통가치가 훼손되지 않을지, 시장을 외국 로펌에 잃지 않을지 변호사 사회가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각 지방변호사회는 시장 개방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외국 로펌이 독일 변호사를 고용하고 양질의 교육과 보수를 제공하면서 빠르게 사라졌다는 게 현지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벤자민 리스너 CMS 독일 변호사는 “토종 로펌들은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성장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히면서 규모를 키웠다”며 “일부 로펌은 외국 로펌과의 합병을 통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라파엘 서 노튼로즈풀브라이트 독일 변호사는 “독일 토종 로펌 다수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법률시장 소비자인 기업도 로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게 돼 해외사업을 하는 게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프랑크푸르트=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