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창의성 제고 효과 크지만 부작용도…기업문화·정서 고려해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이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경기였지만 인간의 승리를 점쳤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컸던 경기였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계나 컴퓨터의 복잡한 프로그램이 인간의 일을 점차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치가 중요한 물질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한 것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창의성과 학습을 통한 효율성 제고일 것이다. 이것만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핵심 역량임에 틀림없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같은 큰 주제에 대한 논의가 아니더라도 요즘같이 변화가 빠르고 경영 환경 역시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창의성과 효율성 개선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 워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의 확산,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기술의 발전 등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도 스마트 워크에 대한 논의 활성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스마트 워크, '조직 외톨이' 양산할 수도
◆베스트바이, 이직률 65% 줄어

스마트 워크는 고정된 근무 장소, 정해진 근무시간에 따라 일하는 방식 대신 IT 기기 등을 활용해 장소나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하는 유연한 근무 방식을 의미한다. 즉, 직장에서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던 관행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이동·현장 근무(모바일 오피스), 재택근무, 원격 사무실 근무(스마트워크센터) 등이 스마트 워크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스마트 워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를 기점으로 AT&T·베스트바이·시스코·휴렛팩커드(HP) 등이 스마트 워크 제도를 도입했다. 스마트 워크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시장 규모 역시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업인 마켓앤드마켓스에 따르면 스마트 워크 관련 시장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10.7%씩 성장해 2020년에는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스마트 워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일하는 방식이 기존과 사뭇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도입에 따른 기대 효과 때문으로 이해된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효과는 사무 공간 등의 운영비용 절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선택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직원의 생산성과 만족도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스마트 워크 도입으로 AT&T는 20~35%, 시스코는 18% 정도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한다.

회사 차원에서는 사무 공간이나 운영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AT&T와 시스코는 스마트 워크 도입으로 사무 공간을 20~30% 정도 줄일 수 있었고 IBM도 스마트 워크 대상자들을 위한 사무 공간 및 관련된 비용으로 40~60%를 절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과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앤더슨컨설팅은 스마트 워크 도입으로 직원들이 고객과 만나는 시간이 25% 정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하는 공간에 대한 유연성이 증가하면서 직원들이 고객에게 더 다가갈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증가해 이직률이 줄어든 기업 사례도 있다. 베스트바이는 스마트 워크 도입 후 직원들의 이직률이 65% 줄었다고 한다. 만족도의 증가, IT를 활용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 자산의 실시간 연결, 자신의 스타일에 맞춘 업무 시간 조절 등은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창의성과 혁신성을 제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들도 있다. 스마트 워크가 일부 직원의 생산성은 높일 수 있지만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정보의 교류를 제한하고 소속감을 저해해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스마트 워크 대상에서 제외된 직원들의 불만 및 사기 저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유한킴벌리 대치동 본사 스마트워크 시스템.
유한킴벌리 대치동 본사 스마트워크 시스템.
◆‘근무시간도 마음대로’ 워킹맘·워킹대디 ‘환호’

‘여러 개의 회의실과 카페 같은 분위기, 노트북만을 들고 소파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서너 명의 직원들이 40인치 모니터 속의 동료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회의실 풍경’ 등 이 모든 것이 필립스 네덜란드 본사의 모습이다.

스마트 워크는 직장인들에게 일하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 놓고 있다. 지금까지 ‘자기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이 자신이 일하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자기가 일하고 있는 공간이 자신의 사무실이고 자리’인 셈이다. 더 넓게는 회사 건물을 벗어나 집이나 가까운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할 수도 있고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이동 근무도 가능한 것이다.

스마트 워크 도입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로 ‘9 to 6(9시 출근, 6시 퇴근)’의 업무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뀌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나 시차 출퇴근을 통해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택근무자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고 부족한 시간은 저녁 시간에 근무하는 것이다.

업무 시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개인에게 보다 효과적인 시간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개인마다 업무 스타일이 다를 수 있는데, 몰입도가 보다 높은 시간에 근무하고 그 외 시간은 개인의 발전과 여가를 위해 활용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특히 육아에 대한 부담이 작지 않은 ‘워킹 맘’과 ‘워킹 대디’에게는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한 기업은 임직원들이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출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육아 부담이 큰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을 조정해 일뿐만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에서다.

회사는 보다 유연하게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고객 대응을 위한 콜센터를 365일 가동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IBM, 재택근무자 시간·공간 관리 교육

기술의 발전은 업무 처리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업들이 전자결재, 화상회의 시스템, 사내 인트라넷 구축 및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등을 속속 도입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보다 빠르게 업무 처리가 가능하도록 업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는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기도 한다.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들은 스마트 워크를 구축해 실시간 이슈 추적 및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멕시코 공장에서 발생한 생산 설비 불량 문제를 한국 본사의 기술센터에서 화상회의를 통해 적시에 해결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베리폰(Verifone)은 ‘릴레이 레이스(Relay race)’ 업무 방식을 활용해 제품 개발의 속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즉, 미국 본사에 있는 엔지니어가 작업해 퇴근할 때 사내 인트라넷에 올려두면 호놀룰루에 있는 다른 개발자가 이를 받아 연이어 작업하고 인도에 있는 또 다른 개발자가 후속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미국 본사 직원은 다음 날 출근할 때 그 결과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스마트 워크가 직장 생활의 방식을 진일보시킨 측면이 있지만 기업의 인력과 조직 관리 측면에서 여러 가지 숙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스마트 워크 근무가 모든 직무와 구성원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업이 많은 직무나 생산 관련 직무는 업무 수행의 효율성 때문에 스마트 워크를 적용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직원들 사이에 형평성 논란도 있을 수 있다.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는 가능하지 않다면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워크 적용 기준과 프로세스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스마트 워크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업무의 내용이 비교적 명확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고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는 직무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직무 수행자 중에 혼자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직무에 대한 경험 및 지식수준이 높고 작업 공간이나 시간 구분에 대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 관리자로부터 신뢰를 받는 사람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 워크의 취지 중 하나는 일하는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동일하지만 업무 시간을 보다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육아나 자기 계발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재택근무라고 하더라도 일을 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칫 사적인 일들이 회사의 업무를 방해해 생산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M은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시간과 공간 관리를 위한 별도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 특히 자녀를 둔 직원들에게는 ‘일하는 공간과 놀이 공간의 구분’, ‘사무실 근무자들과의 소통 방법’, ‘업무 시간과 육아 시간 구분’ 등에 대해 상세하게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간 관리를 위해 관리자들도 유념할 사항이 있다. 스마트 워크의 도입과 기술의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 수행이 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항상 모든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들이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수시로 연락하게 되면 직원들의 불만만 높아져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소속감 잃지 않게 주의해야

집에서 또는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하는 것은 회사가 아닌 공간에서 혼자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상사나 동료의 방해 없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외톨이가 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우려 또한 크다.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프리랜서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조직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에게 소속감은 일에 몰입하고 성과 창출에 매진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에 가벼이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소속감은 상사나 동료와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연결 고리이기 때문에 협업을 가능하게 하고 집단의 창의성을 도모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스마트 워크 대상자들이 마치 외로운 용병이 돼 소속감을 잃지 않도록 조직 차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은 스마트 워크를 도입해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이것이 고용 브랜드처럼 여겨져 인재를 유인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서, 특히 기업 문화와의 적합성은 반드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오히려 스마트 워크의 잘못된 적용으로 조직의 응집력이 떨어지고 만족도가 저해될 우려도 있다. 유행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기업에 적합한 스마트 워크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조범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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