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 시세조종, BNP파리바는 정당한 리스크 관리"

주가연계증권(ELS)을 발행한 증권사와 파생상품 계약을 맺고 기초자산을 대량 매도했다가 투자자들로 부터 소송을 당한 외국은행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대법원은 외형상 위험회피를 위한 주식거래였더라도 구체적 매매 형태에 주가를 일부러 낮추려 한 흔적이 있는지 따져 손해배상 여부를 결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4일 김모(61)씨 등 투자자 26명이 각각 "804만∼2억6천827만원을 배상하라"며 도이체방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만기평가일 도이체방크의 거래 형태는 시세조종 행위라고 지적했다.

가격이 오를 때마다 주식을 팔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주가가 올라간 오후에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도했다.

장 마감 10분 전부터는 예상체결가격이 기준가격을 근소하게 넘어서는 시점마다 반복적으로 주식을 대량매도해 실제로 예상체결가격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당시 기초자산 가격이 손익분기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었으므로 종가를 낮출 동기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수익상환을 피하기 위해 이뤄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내지 부정거래행위"라고 지적했다.

김씨 등은 2007년 8월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원금비보장형 ELS에 투자했다.

중간평가일과 만기일 삼성전자·KB금융 보통주 가격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면 연 14.3% 수익을 더해 상환받는 구조다.

기초자산 가격은 2년간 조기상환 조건을 맞추지 못했다.

만기평가일인 2009년 8월26일 삼성전자 주가는 기준가격을 훨씬 상회했고 KB금융은 장 마감 직전 상환조건인 5만4천740원을 약간 웃도는 5만4천800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10분 동안 주가가 100원 떨어지는 바람에 김씨 등은 원금의 74.9%만 돌려받았다.

투자자들은 도이체방크가 10분 사이 KB금융 주식 12만8천주를 집중 매도하는 바람에 주가가 떨어졌다며 소송을 냈다.

도이체방크는 김씨 등이 투자한 ELS와 같은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을 한국투자증권과 거래하는 스왑계약을 맺어 실질적 상환 책임이 있었다.

당시 주식 매도는 주가 등락에 따라 기초자산 보유량을 조절해 위험을 회피하고 상환재원을 마련하는 '델타헤지'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현대증권과 스왑계약에 따라 같은 방식으로 위험회피 거래를 한 BNP파리바은행에는 반대로 승소를 확정했다.

BNP파리바은행은 현대증권이 2007년 10월 발행한 ELS의 기초자산인 신한은행 주식으로 델타헤지를 했다.

그 결과 만기평가일 주가가 기준가격 이하로 떨어져 현대증권 ELS에 2억원을 투자한 삼성새마을금고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재판부는 "델타헤지의 원리에 부합해 거래했고 만기기준일 매도한 신한은행 주식 규모가 전체 거래량의 20% 이하여서 한국거래소가 정한 'ELS 헤지거래 가이드라인' 요건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만기일 전날과 이틀 전 주가가 상환기준 아래에 형성돼 있는데도 대량의 주식을 추가 매수한 점을 봐도 시세조종이나 상환조건 충족을 무산시킬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최근 대우증권과 BNP파리바은행의 또다른 헤지거래를 이유로 제기된 ELS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엇갈린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우증권의 경우 장 마감 직전 기준가격 이하로 주식을 집중 매도하는 등 주가를 떨어뜨릴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반면 BNP파리바은행은 시세조종 정황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현재 BNP파리바은행과 캐나다왕립은행 등을 상대로 한 ELS 손해배상 소송이 하급심에 여러 건 계류 중이다.

대표당사자가 소송하고 피해자 전체에게 효력이 미치는 증권관련집단소송 신청도 2건 제기된 상태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