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다 찼다"…산부인과 대기시키고 계약 날짜 줄여
산후조리원 연계 업체 현금만 요구…영수증 미발행

30대 중반의 나이에 '첫째'를 가진 김모(여)씨는 출산을 5개월 앞둔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산후조리원과 계약했다.

산후조리원은 또래 산모들 사이에서 출산 후 당연히 거쳐야 할 '코스'로 통했고 다니던 산부인과와 연계된 조리원이라 믿음이 갔다.

13박 14일을 지내는데 220만원을 달라고 했지만 가격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인근의 다른 산후조리원은 40만원가량 더 저렴했지만 시설이 열악했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멀어 '몸풀기'를 도와줄 가족도 가까이 없었다.

조리원 상담사는 "서울이 아니라 그나마 비싸지 않다"는 위로하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올해 1월 중순 여자아이를 낳은 김씨가 남편을 시켜 산후조리원에 출산 사실을 알리자 황당하게도 '빈방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럼 어쩌느냐"고 되물으니 하루 11만원인 병원 입원실에서 3일간 더 대기해야 한다는 준비한 듯한 답이 따라 나왔다.

연장된 3일간의 입원실 비용은 산후조리원에서 부담한다고 했지만 계약기간 '13박 14일'에서 병원에 추가로 입원한 기간인 '3박 4일'은 뺀다고 했다.

따져보니 하루 15만원가량인 산후조리원 입실료보다 병원 입원실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김씨는 "미리 5개월 전에 예약했는데도 조리원 방 수보다 많은 계약을 받다 보니 제때 입실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산모도우미를 부르는 게 나았다"고 후회했다.

출산한 산모들을 상대로 한 산후조리원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김씨처럼 미리 20만원을 내고 출산 예정일에 맞춰 계약했는데도 제 날짜에 조리원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불만은 인터넷 육아 카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천 한 산후조리원 관계자는 "보통 출산 3∼4개월 전에 예약을 받는데 방을 여유 있게 두면 많은 마진이 남지 않는 조리원 특성상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며 "다소 빡빡하게 예약을 받아놔야 공실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접수한 산후조리원 관련 불만 민원은 2011년 660건에서 2012년 867건, 2013년 1천6건, 2014년 1천206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986건으로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산모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는다.

주로 산후조리원 비용 관련 분쟁이 대부분이다.

한 30대 산모는 지난해 11월 1주일간 계약한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가 개인 사정으로 하루 만에 퇴소해야 할 상황이었다.

조리원 측은 1주일 비용을 모두 내야 아기를 데리고 퇴소할 수 있다고 버텨 어쩔 수 없이 전체 비용 75만원을 지급하고 퇴실했다.

이 산모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요청했고,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에 따라 전체 비용의 60%가량인 46만원을 돌려받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하반기(7∼12월) 전국 산후조리원 604곳을 대상으로 합동 점검한 결과 모자보건법을 위반해 과태료 처분이나 시정명령을 받은 업체는 51곳이었다.

간호 인력을 기준에 맞게 채우지 않은 산후조리원이 19곳으로 가장 많았고 직원 건강검진을 하지 않거나 시설기준을 위반한 업체도 각각 15곳과 4곳이 적발됐다.

일부 산후조리원은 손발 조형물 제작 업체, 마사지 업체, 아기 사진 스튜디오 등과 제휴한다.

이들 업체가 산후조리원에 들어와 산모들을 상대로 영업하도록 허가하고, 중간에서 소개비를 받아 챙긴다.

피해는 고스란히 산모에게 돌아간다.

업체는 카드 결제 대신 무조건 현금만을 요구한다.

현금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하면 부가세 10%를 따로 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제휴업체들이 산후조리원에 주는 소개비를 산모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카드 수수료를 아껴 채우는 꼴이다.

인천의 한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 관계자는 "병원이 함께 운영하지 않는 개인 산후조리원은 입주 업체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고 영업을 허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출산한 박모(28·여)씨는 "계약할 때는 어떻게든 접수하려고 산후조리원이 '을 행세'를 하지만 출산 후 입실하고 나면 오히려 산후조리원이 '갑'으로 돌변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24일 "산후조리원 계약 시 환급 기준 등 약관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고 현금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으면 국세청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