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분량 노트에 가정불화·딸 원망 소소하게 기록
딸 사망 원인·암매장 장소·심경은 일절 언급 안 해


가혹행위로 네 살배기 친딸을 숨지게 한 한모(36·여·지난 18일 사망)씨는 6권 분량의 노트에 집안에서 발생했던 소소한 갈등과 남편, 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남겼다.

중고생용 노트 5권과 낱장 수십장을 묶은 노트 1권 분량이다.

그때그때의 심경을 적기 시작한 이 메모는 2011년 6월부터 작성됐다.

한 해 전 7월 안모(38)씨와 동거에 들어간 한씨가 그 해 4월 30일 아동보육시설에서 네 살배기 친딸을 데려오고 난 뒤 한 달 조금 지나서부터다.

이 메모에는 친딸과 함께 살면서 불거진 가족 갈등이 담겨 있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 담겨 있지만, 친딸에 관한 감정의 표현이 많다.

"애가 자꾸 거짓말을 한다"거나 "애가 말을 안 들어 때렸다"는 일상의 기록에서부터 "애만 없었으면…"하고 친딸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한씨의 속내도 담겨 있다.

친딸 때문에 남편과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는 글도 눈에 띈다.

한씨는 이런 내용을 노트 외에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도 남겼다.

과거 사귄 남성과의 사이에 태어난 친딸이 자시의 결혼생활을 순탄치 못하게 가로막는 천덕꾸러기로 여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경찰은 이 메모를 토대로 네 살배기 안 양이 목숨을 잃을 당시의 상황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다.

네 살배기 안 양이 친모 한씨의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은 것은 친모, 계부와 함께 산 지 8개월째인 2011년 12월 중순께다.

한씨의 유서와 이를 토대로한 계부 안씨의 진술로 확인된 내용이다.

경찰은 6권 분량의 한씨 노트가 발견되자, 안양의 구체적인 사명 경위, 계부 안씨의 가담 여부, 시신 유기 방법이나 장소 등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한씨의 기록은 사고가 나기 한 달전인 2011년 11월 중순에서 멈췄다.

그 이후 친딸 살해가 발각될 것을 우려, 자살한 지난 18일까지 무려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어디에도 친딸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다.

이후에도 남편과의 다툼이나 갈등은 메모로 남겼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딸이 숨진 데 대한 회한이나 후회, 속죄의 글도 한 줄 남기지 않았다.

한씨가 메모한 6권 분량의 노트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내용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가 뜯겨나간 흔적도 없다.

이런 정황상 딸이 숨질 무렵부터는 한씨가 딸의 존재감 자체를 부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천륜에 어긋나게 딸을 살해한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싶지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을 수 있다.

한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목숨을 끊었는데 이때 남긴 유서에서도 친딸이 숨질 당시의 상황이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모두가 나의 책임"이라고 적어 딸이 숨진지 5년 만에 처음으로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원망의 대상이긴 했지만, 친딸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한씨로서는 평생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을 것이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