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방문력·발열·근육통에도 1차 진료 때 발견 못 해
복지부는 "문제 없다"…의료진 판단 존중 입장


정부의 모호한 지카바이러스 신고지침 때문에 첫번째 감염자 확인 과정에서 방역망에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국내 첫 지카바이러스 감염자가 방문한 의원은 1차 진료에서 브라질 방문과 근육통, 고열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도 위염 진단을 내리고 방역당국에 지카바이러스 의심환자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지카바이러스 환자가 며칠뒤 상태가 더 악화해 발진 등을 보이자 방역당국에 지카바이러스 의심환자로 신고했다.

더 큰 문제는 방역당국이 지카바이러스 신고의무를 어겼다고 볼 수 있는 이 의원에 대해 "문제 없다"고 일찌감치 판단해 신고체계를 스스로 느슨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카바이러스 환자 신고 지침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 증상 시작 2주 이내에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국가 방문 ▲ 37.5℃ 이상의 발열 ▲ 관절통, 근육통, 결막염, 두통 중 하나 이상의 증상 등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해당 환자를 '의심환자'로 분류하고 24시간 안에 관할 보건소에 신고해야 한다.

지카바이러스는 법정 감염병이어서 이를 어길 경우 2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 첫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환자인 L(43)씨가 방문한 의료기관인 광양 선린의원이 신고 의무를 어겼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질본의 역학조사 결과 L씨가 18일 이 의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진료 기록에는 체온이 37.2℃와 37.6℃로 기록돼 있다.

감염 의심 기준에 해당하는 37.5℃에 걸쳐 있었다.

L씨는 브라질 방문력에 대해서도 의료진에게 알렸다.

질본은 첫 방문 당시 L씨의 증상에 대해 감기몸살, 오한, 경미한 인후 발적(목구멍이 빨간빛을 띠는 것), 경미한 구역질 증상, 위장염 의심이 있었다고 22일 언론에 공개했지만, 진료 기록에는 이때 밝히지 않은 근육통 증상이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즉 의심환자로 분류할 만한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으로, 지침상으로는 첫 방문 당시 A씨가 의무 신고 대상이었다고 볼만한 여지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방역 당국이 신고 의무가 없다'고 지침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

질본 관계자는 "첫 방문 당시 의료진은 A씨가 위장염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여기에 맞게 항생제 등을 처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진료 기록에 근육통이라고 언급은 돼 있지만, 의료진이 지카바이러스가 아닌 위장염으로 진단한 만큼 신고 의무를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즉 지침상 신고의무대상에 해당하는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의사의 진단을 존중해 신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L씨는 얼굴과 몸통, 팔, 다리에 발진이 생기고 근육통이 심해지자 이틀 후인 21일 같은 의원을 찾았다.

이 의원의 의료진은 이번에는 보건소에 즉시 신고해 전남 보건환경연구원의 유전자 검사(RT-PCR)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정부의 지침에 대해 일선 의료기관은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지침이 모호해서 의무 신고 대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차 의료기관의 한 의사는 "환자를 관찰하다가 두번째 방문에서 의심 상황을 파악해 신고한 만큼 선린의원 원장을 비난할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다만 지침이 의심환자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관절통, 근육통, 결막염, 두통'은 사실상 다양한 질병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모든 감염병에는 발열과 근육통이 있으며 열이 나면 몸이 쑤셔서 근육통 증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증상 자체가 모호한데 그걸 기준으로 의무 신고 대상임을 가리고 벌금을 부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질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환자의 초기증상이 '감기몸살', '오한'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의료기관은 이 같은 증상을 참고해 의심되면 바로 관할 보건소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김민수 기자 bkkim@yna.co.kr, k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