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프로그램 알집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SW)기업 이스트소프트 정상원 대표가 지난해 여름 서울대를 찾았다. 알집 개발을 함께한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천 교수와 얘기하던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가 필요한 기술의 상당 부분을 서울대 수리과학부가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가 신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영상처리는 20년 이상, 딥러닝은 1년반가량 연구가 진행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스트소프트가 올해 1월 서울대에 매년 5000만원씩 지원하는 ‘산업연구 활성화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 이유다. 이 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서울대는 23일 관악캠퍼스 상산수리과학관에서 산업수학센터 개소식을 연다.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수학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최초의 전담기관이다.
수학에 눈 뜬 기업들, 신산업 찾아 대학으로
여기에는 삼성전자 SK텔레콤 KT 등 대기업은 물론 엔씨소프트와 코나아이 등 정보기술(IT)기업도 참여한다. 이들은 산업수학센터에서 딥러닝 등 인공지능 분야를 포함해 데이터과학, 영상처리, 암호학, 금융수학 등 수학과 산업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를 하도록 연구비를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생체인증 시 입력하는 생체정보를 암호화해 정보 유출을 막는 동형암호 연구를, KT는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질병부터 허니버터칩 같은 상품에 이르는 유행의 진원지를 찾는 빅데이터 연구를 한다.

참여 기업들은 수학이 공학기술의 정교함을 높이고 더 높은 차원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 대표는 “강의실 속 수학을 산업에 적용해 공학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가 됐다”며 “70%대에 머무는 유해물 차단 필터링 기능에 수학기술을 적용하면 정확도가 90%대로 높아지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김이식 KT 빅데이터센터 상무도 “빅데이터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문은 수학”이라며 “2014년 개발한 조류인플루엔자 전파 경로 분석기술에 새로운 수리적 알고리즘을 입혀 고도화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산업수학센터에는 인공지능 전문가인 강명주 수리과학부 교수를 비롯해 위상수학적 데이터분석 전문가 국웅 수리과학부 교수, 암호학 권위자 천 교수 등 수학자 9명을 비롯해 공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 교수 19명이 참여한다. 이상원 법학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 발달이 불러올 법적 문제를 연구한다.

초대 센터장을 맡은 천 교수는 “수학은 무언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가는 원천기술”이라며 “산업수학센터는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문으로 수학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오형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