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씨 의붓딸 시신 암매장 장소로 지목한 야산 16곳 팠으나 허탕
경찰 "시신 유기 유력한 입증 행위…시신 못찾아도 혐의 적용 가능"


누가 더 고수인가.

2011년 12월 욕조에서 '물고문' 끝에 숨진 청주 안모(당시 4세)양 시신 수습이 지연되면서 안양을 진천의 야산에 몰래 묻었다고 진술한 안모(38·구속)씨와 그의 시신 유기 혐의를 입증해야 할 경찰의 보이지 않는 '두뇌 싸움'이 치열해 보인다.

안씨는 자신의 시신 유기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의붓딸 안양 시신을 경찰이 확보하지 못하도록 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고, 경찰은 이런 안씨의 행동이나 진술을 역이용,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활용하려는 셈법이다.

말 그대로 '뛰는 계부에 나는 경찰'이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 수사에 혼선을 주는 듯한 안씨를 압박하고 있다.

안양의 친모이자 안씨의 아내로,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 18일 자살한 한모(36)씨가 남긴 메모도 확보·분석 중이다.

◇ 거짓말 일관 안씨 말 믿고 16곳 팠지만 시신 수습 '허탕'
경찰은 안씨가 암매장 장소로 지목한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야산에서 이틀에 걸쳐 연인원 120여명과 수색견 2마리, 중장비를 동원해 무려 16개 지점을 발굴했지만, 안양 시신을 찾지 못했다.

시신을 깊게 파묻지 않았다면 산짐승에 의해 훼손될 수도 있겠지만, 1.5m 깊이로 파 묻었다는 안씨의 진술대로라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4세 아이여서 5년이 지나면서 시신이 흙처럼 완전히 삭을 수 있다는 가정도 시신을 감싸 묻었다는 이불보가 발견되지 않아 성립되지 않는다.

경찰 내부에서는 안씨가 지목한 곳에서 시신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

'시신 없는 시신 유기 사건'으로 끌고 가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안씨가 일부러 엉뚱한 곳을 암매장 장소로 지목, 경찰이 허탕을 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사고 있다.

계부 안씨는 처음부터 경찰의 믿음을 사지 못했다.

기록상 '장기 결석' 상태인 안양의 소재를 묻는 A초등학교 교사에게 그는 "외가에 있다"고 속였다가 거짓말로 드러나자 "평택 보육원에 놓고 왔다"고 둘러댔다.

한씨가 경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 18일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죽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자살하자 그제야 안양 암매장 사실을 털어놨다.
숨진 네 살배기 의붓딸을 암매장한 혐의(사체유기)로 구속된 안모(38)씨가 22일 오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기위해 충북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숨진 네 살배기 의붓딸을 암매장한 혐의(사체유기)로 구속된 안모(38)씨가 22일 오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기위해 충북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긴급체포된 뒤에는 딸이 숨진 당일 유기했다고 진술했다가 2∼3일간 아파트 베란다에 놔뒀다고 번복했다.

한겨울인 12월 중순 만삭의 한씨와 삽으로 땅을 1.5m나 파고 암매장했다는 것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 경찰은 "진천 야산에 묻었다는 안씨 진술은 거짓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포크레인을 동원 그가 지목한 야트막한 야산을 벌집 쑤시듯이 헤집었다.
21일 오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의 한 야산에서 네 살배기 딸의 시신을 암매장한 계부 안모(38)씨가 딸의 시신을 묻은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오전 충북 진천군 백곡면의 한 야산에서 네 살배기 딸의 시신을 암매장한 계부 안모(38)씨가 딸의 시신을 묻은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연합뉴스
◇ 안씨 요구 순순히 따라준 경찰의 '반전 속셈'

안씨에 대한 믿음이 사그라들 법 하지만 경찰은 조급해 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썬 사건 종결의 열쇠를 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그의 진술이 일관성이 떨어져도 다그치지 않고 있다.

야산을 모두 파헤치다시피 하고도 안양의 시신을 확보 못 했지만 노여워하지 않고 있다.

이틀에 걸친 수색 작업에서 경찰은 안양의 시신이 이 야산에 있다고 확신하듯 행동했다.

시신 암매장 과정을 설명한 안씨를 앞세워 도로에서 산을 3∼4차례 오가며 당시 상황을 재연토록해 범행 루트를 확인했다.

발굴 작업 때는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서도록 해 안씨가 '지시'하도록 했다.

경찰은 이런 장면을 꼼꼼히 사진으로 남겼다.

경찰이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자 안씨는 "더 파 봐라. 왜 이렇게 못 파느냐"고 적극적인 작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바로 경찰이 원한 대목이다.

경찰의 계산은 다른 데 있었다.

만에 하나 안양의 시신을 확보하지 못해 안씨의 자백만 있을뿐 증거가 없는 재판이 되는 것에 대비하는 의도였다.

경찰은 안씨가 기소 뒤 법정에서 조사 과정의 진술을 번복, 무죄를 주장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수색 작업을 통해 안양의 시신을 찾지 못하더라도 경찰 기록에 남은 안씨의 행동과 발언은 법정에서 번복할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경찰의 '허허실실' 수사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안씨는 22일 거짓말 탐지기 '심문(?)'을 받았다.

프로파일러가 3시간가량 안씨의 심리를 분석하기도 했다.

안씨가 꼭꼭 감추는 것이 있다면 심적 변화를 통해 무장해제하려는 압박 카드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그가 시신 유기 장소를 은폐하고 있다면) 오늘 조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자살한 한씨가 남긴 메모와 이 부부의 스마트폰, PC도 확보해 내용을 분석 중이다.

시신 유기 혐의로 안씨를 법정에 세울 준비를 마친 경찰이 촘촘한 '그물망 수사'로 사건의 전모를 확인, 그에게 합당한 죄의 대가를 받게 할지 주목된다.

(청주연합뉴스) 박재천 이승민 기자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