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임차인 모집해 가짜 전세계약 31억원 대출…형식적인 대출심사 악용

무주택 서민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제도의 형식적인 서류 심사를 악용해 수십억원을 부정 대출받은 기업형 사기조직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1일 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고 시중 은행에서 위탁판매하는 주택 전세자금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48)씨와 김모(36)씨 등 9명을 구속하고 공범 6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 등은 2014년 5월부터 지난해까지 급전이 필요한 명의 대여자(일명 대출 바지)를 모집한 뒤 임대차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위조해 금융기관에 제출하는 수법으로 총 11개 은행에서 31억1천만원의 전세자금을 부정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가 총책인 A조직은 은행 대출금이나 전세보증금이 걸린 부동산을 헐값에 산 뒤 사전에 모집한 '대출 바지' 명의로 소유권 등기를 이전했다.

이후 유령회사를 만들어 또 다른 명의 대여자가 근무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 등 전세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해 가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은행으로부터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이들은 주택을 소유한 지인 등에게 수수료를 주고 가짜 전세계약을 맺거나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가 취소한 뒤 전세계약을 한 것처럼 위조해 부정대출을 받았다.

이들은 불법으로 대출받은 전세자금 28억원을 총책 50%, 모집책·위조책 각각 20%, 대출 바지 10%로 나눠 가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부산의 조직폭력배 행동대원인 김씨가 총책이었던 B조직은 죄질이 더욱 나빴다.

B조직은 돈이 필요한 주점 여성을 모집해 선급금을 빌려주고 이를 갚지 못하면 위장 취업하게 한 뒤 재직증명서를 제출하게 해 은행 4곳으로부터 모두 3억1천만원의 불법 전세대출금을 받아 가로챘다.

특히 이씨 등은 4차례에 걸쳐 여성을 해외 원정 성매매에 내보내고 선급금을 갚지 못하자 불법 전세대출까지 받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무주택 서민 전세대금 대출 심사과정에서 대부분의 은행이 신청자가 제출한 서류를 형식적으로 확인하고 집주인을 찾아가는 실물조사를 거의 하지 않는 등 자격심사에 허점이 많았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18조원이 은행을 통해 대출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대출금 가운데 1.2%인 2천억원이 이 같은 부정대출 사기나 채무 불이행으로 줄줄 샌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전세자금대출 기금이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대출심사를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win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