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 포스텍 총장 "허사비스 키운 영국의 교육혁신을 보라"
인간이 즐기는 가장 복잡한 두뇌게임이라는 바둑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프로 9단을 4승1패로 이겼다. 하루가 다른 정보기술의 발전에 많은 사람이 놀라고 때론 두려움까지 느끼는 듯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 알파고까지 등장했으니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틀림없는 사실은 사람처럼 학습하고 사리를 판단하는 인공지능이 바둑에 그치지 않고 의료, 금융, 서비스,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류사의 대전환점인 듯싶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허사비스 키운 영국의 교육혁신을 보라"
대한민국은 한 세기 전에 기계 기술의 발전에서 낙오했고 이 때문에 절절한 아픔을 겪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과제는 미래를 담당할 인력 양성, 즉 교육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를 배출한 영국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4년부터 초등학교 정규 교과목에 소프트웨어를 포함시켰다. 한국 정부도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를 선포하면서 2017년부터 초등교육에서도 이를 정규과정화한다고 발표했다.

답답한 것은 현재의 교육체제와 문화로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모든 교육정책의 초점이 사교육 억제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쉬운 수능 문제를 반복 연습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정답을 골라내는 방법만 터득하며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허사비스 키운 영국의 교육혁신을 보라"
입시 때 제출하는 자기소개서나 추천서 등에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기록하면 무조건 낙방시켜야 한다는 교육부 지침을 대학들은 준수하고 있다. 창의적이며 특정 분야에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막는 악성 규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하루빨리 ‘좋은 대학=행복한 삶’이라는 미신(迷信)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 진보에 가장 먼저 대비해야 할 일은 일자리 문제일 것이다. 로봇이 AI와 함께 인간의 일을 본격적으로 대신하면 지금의 일자리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급격한 변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 칭하면서, 향후 5년간 세계적으로 700여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200여만개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의 어린이는 세 명 중 두 명 정도가 현재는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니, 이런 변화가 사회에 미칠 충격은 쓰나미 같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기술 진보로 사라진 일자리는 허다하다. 한때 사진 촬영과 인화(印畵)를 전문으로 하던 사진관은 동네마다 있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간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메일이 등장하면서 우체국에서는 수많은 직업이 사라졌고 앞으로 더 사라질 것이다. 편지에 적힌 주소를 인식하고 발송할 지역별로 분류하는 일 모두를 이제는 기계가 완벽히 처리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의 진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할 것이기에 축복임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발전으로 가장 먼저 일자리를 빼앗긴(?) 대상은 어린이였다. 미국에서는 1901년에 이르러서야 12세 이하 어린이의 노동이 법으로 금지됐다. 그 후에도 한참 동안 13세 이상이면 성인처럼 노동을 했다. 아프리카의 몇몇 저개발 국가에서는 오늘도 5~14세 아동의 약 절반이 일을 하고 있다. 기술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어린이조차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허사비스 키운 영국의 교육혁신을 보라"
인류가 지금처럼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 편하게 살게 된 것은 기술 진보 덕이다. 지난 20세기 동안 사회 전체 평균 근로시간은 절반 정도로 줄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공장노동자의 근로시간은 1주일에 60시간이 넘었으며 1주일 내내 휴일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현재 많은 선진국가의 근로시간은 1주일에 40시간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프랑스는 15년 전에 1주일 35시간 근로를 공식화했다. 100년 전에 비해 인류는 노동의 짐을 절반 이상 덜어냈으니 그만큼 유토피아에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AI와 같은 기술의 진보가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꼭 한 세기 전, 인류가 처음으로 하늘을 날기 시작한 뒤 많은 일자리가 항공산업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정보기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여하튼 현재 일자리 중 고도의 전문직과 비교적 단순 업무를 제외한 중간의 직업군은 특히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우선 검토할 일은 어째서 미국과 일본에는 각각 3만1000가지, 2만5000가지의 직업이 있는데 우리는 단지 1만1000가지밖에 없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직업의 다양성이 부족한 이유는 그 대부분이 아마도 정부와 우리 사회 스스로의 규제 때문일 것이다. 직업과 연관한 각종 규제 해소는 발등의 불 끄기만큼 급한 일이다.

앞으로 1주일에 3~4일 동안 20시간만 일해도 되는 세상이 올 것이기에, 우리가 지녀온 근로와 직업에 대한 가치관도 바꿔야 한다. 결국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직업을 나눠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더욱 확산돼야 할 것이다.

세계 처음으로 1주일 30시간 근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배우자. 아울러 임금피크제 같은 나눔 제도를 적극 수용하자. 나눔의 문제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때문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문제부터 끊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