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소송 남발 막는 조정…성공률 50% 넘어도 신청률 1%뿐
“수술은 성공적이라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립니까.” 법정에서 고양이 주인 A씨가 수의사 B씨에게 언성을 높였다. A씨는 B씨가 중성화 수술에 실패해놓고 발뺌한다며 수술비 30만원과 위자료 100만원 등 총 13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B씨는 “내가 수술한 고양이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수술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사건이 돈 문제를 떠나 감정문제로까지 치닫자 강세빈 판사가 양측에 조정을 제안했다. A씨와 B씨는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의견을 좁히더니 B씨가 A씨에게 50만원을 주면서 사과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조정제도 활성화가 대법원이 추진 중인 상고법원 설치의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 이상씩 처리하는 ‘소송 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3심까지 가서 승패를 가르는 소송 대신 합의로 단번에 끝내는 조정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정은 원·피고 모두 이기는 윈윈게임

조정은 중립적인 제3자가 당사자의 동의 하에 서로 협상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쟁해결 방법이다. 분쟁 당사자가 직접 조정을 요청하는 ‘조정 신청’과 판사가 재판 도중 조정으로 넘기는 ‘조정 회부’가 있다. 조정으로 넘어가면 전직 법조인을 비롯해 의사 건축가 교사 등 사회 각계 인사로 구성된 전문가(조정위원)가 당사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법을 모색하게 된다. 서울중앙지법에는 현재 417명의 조정위원이 활동 중이다. 조정성공률도 높아 상사중재원 등 17개 외부조정기관은 평균 32.3%(2015년), 상근조정위원은 54%의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경우에 따라 판사가 직접 조정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조정 결과는 대법원의 화해 또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뒤 서울고등법원 조정총괄부장에 임명된 조병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1기)는 “재판은 시간이 부족해 증거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고 주장도 모두 들을 수 없어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정은 재판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승복률이 높다”고 말했다.

◆판사, 변호사도 인식 바뀌어야

비용과 시간 등 조정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활용도는 여전히 낮다. 지난해 1심 소송 100만6582건 중 조정이 이뤄진 것은 9만4416건으로 약 9.4%에 그쳤다. 이 중 사건 당사자가 직접 조정을 신청한 경우는 9991건으로 전체 민사 사건 중 1%에도 못 미쳤다. 미국은 1960년대 ‘대체적 분쟁해결법(ADR)’을 제정해 지금까지 전체 민사 사건 중 90% 이상을 조정으로 해결하고 있다. 일본에는 인증된 민간 ADR 기관이 130개가 넘는다. 조 부장판사는 “내가 재판을 할 때도 판사가 재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외부인인 조정위원에게 사건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며 “이 같은 판사들의 생각도 조정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이 조정을 꺼리는 것도 장애요인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조정을 하면 변호사 입장에선 성공 보수를 못 받거나 일부만 받아야 한다”며 “판사가 조정을 권유하더라도 가능하면 조정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조정전치주의 도입 검토

정부는 조정 활성화를 위해 조정기본법 제정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11~12월 이와 관련된 용역보고서를 2건 발주해 최근 모두 받았다. 이 가운데 중앙대 산학협력단이 제출한 ‘ADR기본법 제정 방향 및 현행 ADR 기구의 합리적 운영 방향’을 보면 법무부는 ‘재판 중인 사건을 외부조정기관에 회부하는 법적인 근거’를 조정기본법에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가벼운 사건은 조정을 반드시 거쳐야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정전치주의’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 일본 등은 소송가액이 낮거나 이웃 사이에 발생한 분쟁 등 일부 사건은 소송 전에 반드시 조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