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2월17일자 A27면
본지 2월17일자 A27면
삼일회계법인에 이어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KPMG삼정회계법인 등 국내 3대 회계법인이 소속 회계사에게 명함을 법 규정에 맞게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앞서 삼일회계법인은 외국에서 회계사 자격증만 따고 감독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경우 공인회계사 명칭을 쓰지 않도록 지시한 바 있다. 대다수 회계법인은 그동안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국 공인회계사 명칭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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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업계에 따르면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최근 법인에 공지문을 돌려 명함에 들어가는 회계사 자격 사항을 법 규정에 맞게 쓰도록 했다.

안진은 공지문에서 “법 규정을 준수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임직원의 명함에 표시하는 자격사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내린다”며 “외국공인회계사 시험은 합격했지만 적법한 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경우 국문과 영문의 회계사 자격사항을 표시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삼일회계법인보다 한 발 더 나간 조치다. 삼일회계법인은 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외국회계사에게 ‘자격’이 아닌 ‘직업’으로서의 회계사를 의미하는 어카운턴트(accountant)를 쓰도록 했다. KPMG삼정회계법인도 삼일회계법인과 마찬가지로 감독기관에 등록하지 않고 자격증만 딴 외국 회계사는 국가명과 어카운턴트로 표기하도록 했다.

‘빅3’ 회계법인이 난데없이 명함 교체에 나선 것은 미국 회계사인 김모씨(39)가 지난해 12월 한국 공인회계사인 것처럼 속인 혐의(공인회계사법 위반)로 검찰에 고발당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외국 회계사가 공인회계사 명칭 사용 문제로 고발당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계법인 내부에서 자격사항 표기에 민감해진 것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소속 공인회계사는 “감독기관에 등록하지 않은 미국 회계사에게 공인회계사 명함을 못 쓰게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업무에 큰 영향은 없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회계업계의 곪았던 부분이 터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공인회계사는 “고액연봉을 받는 파트너급 회계사는 외국 회계사를 기업 회계감사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용하고 있다”며 “젊은 회계사들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공인회계사가 됐는데 자신들이 외국 회계사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데 대한 불만이 쌓였다가 이번에 터져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회계사가 배출되고 있고, 파트너급 승진문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회계사 자격증 보유자들이 국내 회계사 영역을 침범한 탓이다. 김씨를 처음 검찰에 고발한 사람도 현직 한국 공인회계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현직 공인회계사들이 가입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기업감사에 참여한 외국 공인회계사에 대한 증거자료를 모아 향후 수사기관에 고발하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공인회계사법 40조 3에 따르면 외국 공인회계사는 원자격국의 회계법과 회계기준에 관한 자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회계법과 국제회계기준에 관한 자문만 할 수 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