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부터 학대…아동센터ㆍ유치원 전전하다 '사각지대' 방치
출혈·저체온증ㆍ영양실조…온몸 학대 투성이로 7살 삶 마쳐

'7살 원영이'는 그 짧은 생애의 거의 절반을 참혹한 학대에 시달리다 차디찬 땅에 묻히고 말았다.

만 4살도 안돼 시작된 계모의 학대는 원영이가 숨질 때까지 모질고도 잔혹하게 이어졌다.

온 몸이 멍들고,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던 원영이의 모습은 외부 사람들에게도 드러났지만, 아무도 그를 보호해주진 못했다.

부검의는 원영이의 사인이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출혈·저체온증 등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에 따른 복합적 요인"이라고 추정했다.

너무나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무서웠을' 원영이의 지난 3년간 행적을 시간 순으로 추정해본다.

◇ 2013년 : 친부모 이혼ㆍ계모 등장…학대·구타·굶주림의 시작
2009년 9월 생인 원영이가 만 4살도 안된 2013년 8월께 원영이와 세살 위인 누나는 친모 A(39)씨와 함께 살다 아버지 신모(38)씨에게로 넘겨졌다.

협의이혼 및 이혼소송을 잇따라 진행 중이던 부모가 원영이 남매의 친권과 양육권을 친부에게 넘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친모와 떨어진 원영이 남매는 아빠 신씨가 새엄마라며 집으로 데려온 김모(38)씨와 함께 살게됐다.

원영이의 누나는 처음엔 계모와 서먹서먹했으나 밝은 성격 탓에 이내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모는 남매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아침밥은 거의 먹이지 않았고, 제대로 씻기거나 입히지도 않았다.

틈만 나면 회초리로 때렸고, 베란다에 가둬놓기도 했다.

원영이 남매는 친모와 있을 때는 겪어보지 못한 두려움에 점차 말수가 줄었다.

이따금 원영이가 누군가에게 학대 사실을 말하려고 들면 이내 누나가 나서 "집안일은 밖에다 얘기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막아선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해 겨울 두 남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얇은 옷만 입은 채 동네에서 놀고 있었다.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칼바람에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어느 누구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평택 모 지역아동센터 직원이 근처를 지나다가 두 남매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 2013년 겨울이었다.

이 직원은 남매를 지역아동센터로 데려가 밥을 먹인 뒤 돌봐줬다.

항상 굶주려 있던 원영이 남매는 오랜만에 '따뜻하다'고 느낄만한 곳에서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센터에 정식으로 등록하진 않았지만 센터 직원들은 두 남매를 식구처럼 돌봤다.

그래서인지 남매는 "오늘도 밥을 못먹었다"며 센터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 2014년 : '온몸 멍든' 남매 지역아동센터·유치원 '전전'
부모의 방임 속에 두 남매는 이곳에서 굶주린 배를 채웠고, 2014년 초 방학기간 내내 아동센터 운영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은 무려 석 달이나 된다.

계모의 학대 속에서도 그나마 남매가 웃음을 보이며 행복해하던 시기였다.

다음 학기가 시작된 2014년 3월, 원영이의 아버지는 아동센터를 직접 찾아 "이혼 소송 중이라 아이를 돌볼 사정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이던 박향순(67·여)씨는 두 달 가량 자신의 집에서 원영이 남매를 돌봤고, 4월에는 긴급아동추천서를 통해 센터에 정식으로 등록시켰다.

원래 아동센터 등록은 부모의 동의를 받아 돌봄이용신청서를 쓴 뒤 시군구를 통해 하도록 돼 있지만, 원영이 남매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아 기준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딱한 사정의 원영이 남매를 돌보기로 결심한 박씨는 부모 동의를 얻은 뒤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센터에 등록하고 보살폈다.

남매가 박씨의 집에 온 첫 날, 학대의 흔적이 발견됐다.

박씨가 남매를 목욕을 시키려고 보니 양 허벅지와 종아리에 회초리 자국이 선명했고, 원영이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씨는 "원영이 남매를 씻기려고 옷을 벗겼다가 허벅지와 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을 봤다.

상처를 상기시키기 싫어 '많이 아팠겠다.

곧 나을거다'라고 다독였다"며 "원영이는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잠을 자다 침대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말했다.

마침 이혼소송이 끝난 친모도 면접교섭권에 따라 아이들을 찾아와 만났다.

그 두 달 가량은 원영이가 계모를 만나고부터 숨지기 직전까지의 3년 동안 유일하게 '안전'한 생활을 한 시기였다.

문제는 같은해 5월, 원영이 남매가 박씨의 집에서 나와 아버지와 계모에게 되돌려지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친모와 아이들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다 석 달 뒤부터는 아예 면접교섭권 행사조차 가로막았다.

당시 원영이는 평택의 한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있었고,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한창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남매는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 센터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생존'해야 했다.

이후 원영이는 2014년 9월 누나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으로 옮겨 연말까지 다니다가 그후론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이후 자신들을 보살펴 주던 박씨, 제한적으로나마 만나던 친모, 집을 대신했던 아동센터로부터 떨어진 남매는 단 둘이 학대의 현장에 남겨졌다.

◇ 2015년 : 유치원 퇴원·아동센터 등록 해지…'간섭 말라' 부모 주장에 학대 사각지대 방치
학대를 의심한 아동센터 측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수시로 남매의 사정을 알렸고, 신씨 부부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아동센터 관계자는 "아이가 유치원도, 아동센터도 나오지 않아 집에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가기도 했지만, 부모로부터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며 "아이를 찾기 위해 한달 뒤인 2015년 1월, 파출소를 찾아가 '아이가 보이지 않으니 확인을 좀 해달라'고 신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동센터 측은 남매가 석 달 가까이 나타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장기결석으로 센터 등록을 해지했다.

유치원 또한 퇴원 처리됐다.

신씨 부부는 "집에서 교육하겠다"며 유치원을 그만두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원영이의 누나는 아동센터 등록이 해지된 후인 지난해 4월, 평택 시내에 있는 친할머니 집으로 옮겨졌고 인근의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하지만 원영이는 계모의 학대를 받으며 지금의 집에 계속 남게 됐다.

아동센터는 남매가 걱정돼 그 뒤로도 남매의 소식을 이들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듣진 못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아이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던 친모도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말만 건너건너 들었을 뿐이었다.

남매의 누나를 직접 보거나 목격한 사례는 간간이 있었으나 동생인 원영이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동네 주민들도 "작년 11월부터 원영이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5년 11월은 원영이가 욕실에 갇혀 본격적인 계모의 학대를 받기 시작한 시기다.

견디지 못해 욕실을 나오려던 원영이에게는 가차 없이 폭력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원영이는 이마가 찢어졌지만 제대로 된 병원치료도 받지 못했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해 겨울, 원영이는 7살 어린 나이로 하루하루 지옥 같은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 2016년 : 입학유예신청ㆍ경찰 수사 시작…학대 정황 드러나
신씨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 대상인 원영이를 1월 7일 예비소집일에 데려가지 않았고, 같은달 14일 초등학교에 입학유예를 신청했다.

학교에는 원영이의 성장이 늦고 이사할 예정이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실상 원영이는 욕실에 갇혀 극심한 학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모는 같은달 28일 원영이에게 락스를 퍼부었고, 지난 2월 1일 오후 1시께에는 옷을 벗긴 뒤 찬물 세례를 가했다.

밥 한끼도 제대로 못먹던 원영이는 온몸에 찬물 학대를 받은 지 20여 시간 뒤인 2일 오전 9시30분께 화장실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와 계모는 숨진 원영이를 이불에 둘둘 말아 세탁실에 열흘간 방치했다.

이어 이달 12일 오후 11시 20분께 시신을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사망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아동센터 측은 원영이의 초등학교 입학날인 이달 2일 혹여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학교를 찾아갔지만 만나진 못했다.

센터 측은 3일 읍사무소를 통해 신군에 대한 입학유예신청 사실을 확인하고, "가정폭력이 의심되니 아이의 안전상태를 반드시 확인한 후 입학 유예를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등록이 해지된 지 1년이 다 된 원영이를 끈질기게 추적한 셈이지만,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센터 측의 노력은 빛이 바랬다.

다음날인 4일, 입학유예 관련 심의를 앞두고 차일피일 학교 출석을 미루던 신씨 부부는 급기야 "아이가 없어졌다"는 변명을 늘어놔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누나로부터 "그동안 계모에게 1주일에 3∼4차례 회초리로 맞았고 베란다에 감금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신씨 부부를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했다.

이어 경찰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원영이를 욕실에 가둬 놓고 학대, 아이가 숨지자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원영이의 사인이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출혈·저체온증 등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에 따른 복합적 요인"이라고 추정했다.

원영이의 머리부위에서는 장기간 폭행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발성 혈종(피고임 현상)이 관찰됐고 이마 부위 피부 조직은 락스 학대로 인한 섬유화 현상(딱딱해짐)이 보였다.

시신의 피하에는 지방이 별로 관찰되지 않았고, 위에서는 내용물이 거의 없어 영양실조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원영군은 키가 112.5㎝, 몸무게 15.3㎏으로, 키는 같은 나이 어린이 하위 10% 정도, 몸부게는 저체중 상태였다.

모질고 참혹한 '3년 학대'의 흔적을 온몸에 남긴 채 원영이는 7살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평택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k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