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패배를 보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잇따라 승리를 거둔 데 대해 모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굴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에 많은 사람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우울증이나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인공지능포비아(공포증)’ 조짐마저 보인다.

직장인 박모씨는 “바둑은 고도의 정신력 싸움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인간이 우세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며 “이 9단의 패배를 보며 같은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해 종일 울적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황모씨는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지만 예상보다 빨라 당황스럽고 슬프다”고 했다.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바둑은 체스와 달리 컴퓨터가 단순 연산능력만으로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영역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점에서 큰 충격”이라며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여겨진 직관, 창의성, 의사소통까지 기계가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류 진화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직장인은 자신들의 직업이 어느 순간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까 우려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최모씨는 “마치 사람이 개를 문 거 같은 생경함”이라며 “기계가 언젠가 나를 조종하고 내 직업도 차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모씨는 “인간 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직업을 갖는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임규건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도 의사결정지원시스템이 최고경영자(CEO)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결국 인공지능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수준까지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계의 위협에 대한 인간의 공포로 19세기 영국에서 수공업자들이 자동 방직기 등 기계를 파괴한 ‘러다이트운동’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동우 서울 상계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당장 정신병리학적 현상으로 발전하진 않겠지만 인공지능이 전문직 일자리마저 대체하는 일이 발생하면 공포감이 확산돼 러다이트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기계에 인간이 패배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정말로 인공지능포비아란 말이 생길지 모르겠다”고 했다.

반면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선택이 많기는 하지만 유한한 바둑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것의 의미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도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부족한 만큼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오형주/김동현/마지혜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