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노동조합들이 계열사 간 생산물량 조절과 국내외 생산 및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 공식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현대차그룹 10여개 계열사 노조는 올해 사상 초유의 ‘계열사 공동교섭’을 통해 이 같은 요구를 관철하기로 했다. 이는 회사 고유의 경영활동인 생산 및 투자활동에 개입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이란 예상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은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세력이 약해지자 투쟁력을 높이기 위해 계열사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계열사 생산물량 조정까지 개입하겠다는 현대자동차그룹 노조
◆10여개 계열사 노조 공동요구안 마련

10일 노동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위아, 현대케피코, 현대비앤지스틸, 현대로템 등 현대차그룹 10여개 주요 계열사 노조는 이날 각 노조 대표자회의를 열어 ‘중앙교섭 요구안’을 확정했다. 노조들은 다음달 초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할 계획이다.

중앙교섭 요구안에는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보다는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는 ‘그룹의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로 전환할 것’ ‘국내외 생산, 투자 확대, 부품사 육성 등에서 노조가 참여하는 미래전략위원회를 그룹 차원에서 구성할 것’ 등을 요구안에 담았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도 해외 및 국내 공장 생산량을 노사 합의로 결정하자고 요구했다가 경영권 개입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그 안건을 공동교섭 요구안에 다시 올린 것이다.

중앙교섭 요구안에는 계열사 생산량을 조정하는 노사공동위원회를 운영하자는 내용도 포함됐다. 계열사 또는 회사 내 사업부 사이의 물량 갈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현대차 노조는 그동안 현대위아의 엔진 생산에 불만을 나타내왔고, 기아차 노조는 현대차보다 차종이 적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의미다.

요구안에는 또 연간 근로시간을 1800시간 이하로 축소하되 임금은 유지하고, 생산량 감소는 정규직을 새로 채용해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사내하도급을 금지하고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요구도 넣었다.

◆경영계 “노조활동 범위 벗어난 요구”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의 이 같은 요구에 경영계는 명백한 경영활동 침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산이나 투자는 물론 지배구조까지 노조가 관여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공동교섭 요구안을 받아보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면서도 “공동교섭에 응해야 할 법적 의무나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계열사 노조가 공동교섭을 시도하는 것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산업별 노조로서 제 기능을 잃어가는 데 따른 것이란 풀이다. 조합원 15만여명인 금속노조의 60%(9만여명)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최근 정치파업에도 불참하는 등 개별 행동을 하면서 금속노조는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달 대법원이 개별 기업 노조의 산별노조 탈퇴 자율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산별노조 위기론은 더 커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가 공동교섭을 내걸고 무리한 요구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경영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실리 성향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박유기 현대차 노조위원장이 이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공동교섭의 취지상 실제 교섭은 임금이 가장 높은 현대차의 임금을 낮추고 다른 계열사 임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대차 노조가 다른 작은 계열사 노조 대신 싸워주고 실리는 챙기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