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 절도범들 잡고 보니 모두 고학력 60대 노인
나이 먹어도 지식 욕구 넘치는데 돈 없어 책 절도


지난달 14일 오후 1시 20분께 광주 동구의 한 대형 중고서점 한쪽 진열대에서 한 노인이 두리번거리다 책 한 권을 윗옷 속주머니에 구기듯 넣었다.

'그들의 문학과 생애'. 노인이 윗옷 주머니에 넣고 나온 책의 제목이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최근 관내 대형 중고서점에서 책도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수사에 나서 유모(61)씨를 검거했다고 8일 밝혔다.

유씨의 윌세방에서는 그가 2013년 8월부터 52차례에 걸쳐 서점에서 훔친 54권의 책(시가 48만원 상당)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책의 공화국에서', '언문세설', '시여 살아있다며 힘껏 실패하라' 등 유씨가 훔친 책은 인문 서적부터 영어·한자어로 된 원문서적까지 다양했다.

유씨는 젊은 시절 학원에서 한자를 가르치는 등 대졸 고학력자이지만,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고 일용직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경찰은 유씨가 고령에 자식들에게 신세 지고 싶지 않아 책을 읽고 싶어 훔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검거된 다른 '책 도둑'도 고학력자 노인이었다.

배모(67)씨는 같은 중고서점에서 40차례에 걸쳐 40여권(시가 20만원 상당)을 훔쳤다가 지난해 12월 붙잡혔다.

배씨가 훔친 책은 '채근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서정과 서사' 등 대부분이 인문학 서적이었다.

배씨는 "책을 읽고 싶어서 훔쳤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증거물을 압수하기 위해 경찰이 방문한 배씨의 집 거실에는 500여권의 넘는 책이 빼곡히 쌓여있었다.

대졸인 배씨는 퇴직 후 기초 노령연금을 받으며 몇 해 전부터 독서를 취미 삼아 살고 있었다.

이들을 검거한 경찰은 "책을 읽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빌리는 게 상식이지만, 이들은 모두 고학력자로 책 소유욕이 있어 훔친 것 같다"며 "노령에 돈은 없는데 마땅히 할 일도 없어 독서를 취미로 하는 노인들이 대형중고서점에서 잇따라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pch8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