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직원 "대표가 성추행"→경찰 "직원이 허위사실 유포"
정명훈 부인측 "허위사실 유포 지시한적 없어…법적 대응"

2014년 12월2일 새벽. 서울시 의원, 언론사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 이사 등 서울시향과 관계있는 일부 인사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에는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현정 당시 서울시향 대표가 회식 자리에서 남자 직원을 성추행하고, 평소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아 직원들이 박 대표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호소문이었다.

이는 곧바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하버드대 석·박사, 삼성 임원 등 화려한 경력을 지녀 '성공 모델'로 여겨진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남자 직원을 성추행하고 권위주의적으로 시향을 운영했다는 선정성 짙은 이야기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박 전 대표는 당시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순조로운 재계약을 위해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며 '음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론은 그의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서울시향 공연 일정을 자신의 개인 공연 일정 탓에 임의로 변경하는 등 문제를 지적받은 정명훈 전 감독도 "인권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며 '감독직 사퇴 불사' 뜻을 비치며 박 전 대표를 압박했다.

문제가 커지자 서울시가 조사에 착수했고, 그해 말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박 전 대표의 직원 인권침해 의혹이 사실로 보인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도 "(폭언 등이) 사실이라면 경영자로서 문제가 상당히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박 전 대표는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진실게임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결국 한 달여 만에 대표직을 사퇴했다.

'파렴치범'으로 몰린 박 전 대표의 재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의 강제추행 혐의 등을 조사한 경찰은 그해 8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오히려 11월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서울시향 직원 곽모(40)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추행을 당한게 아니라 오히려 허위사실을 주장해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는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곽씨의 신분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었다.

경찰은 이후 서울시향 사무실을 3차례 압수수색하고 시향 직원 등 관계자 33명을 85차례 불러 조사했다.

1년 3개월 정도를 끈 이 사건을 놓고 경찰은 3일 "호소문에 담긴 내용이 모두 거짓으로 판단된다"고 결론 내렸다.

박 전 대표가 곽씨를 성추행한 일도, 시향 직원을 상대로 일상적 인권유린을 가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 정 전 감독의 부인 구모(68·여)씨가 정 전 감독의 여비서 백모씨에게 박 전 대표의 퇴진 문제 등을 논의한 정황을 확보, 구씨를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박 전 대표의 퇴진과 호소문 배포 등에 대해 600여건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의논한 사실이 압수한 휴대전화를 복원한 결과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문자 중에는 구씨가 호소문 유포를 지시하는 취지와 뉘앙스가 있는 문자가 존재한다"며 구씨가 박 전 대표 명예훼손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음을 시사했다.

외국에 장기체류 중인 구씨에게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4차례 요구했지만, 구씨는 이에 응하지 않고 회신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 같은 경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구씨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구씨 측 법률 대리인 법무법인 지평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구씨는 직원들의 인권침해 피해 구제를 도왔을 뿐이지 허위 사실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최초 압수수색에서 나온 문자메시지 중 '섭외', '시나리오'라는 일부 문구에 도취돼 사건을 예단하고 짜맞추기식 수사를 진행한 결과로 보인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구씨 측 변호인은 경찰이 작년 12월 구씨의 입건 사실을 공표해 이미 경찰을 상대로 피의사실 공표 및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이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이어 "경찰이 또다시 이 사건 브리핑에서 관련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dkkim@yna.co.kr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